man on wire – james marsh

외줄타기를 처음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왜?”라는 물음은 몰이해에서 나온 것이라 필립 프티는 고개를 젓는다. 법 집행에 엄격하고 너무 실용적이라는 70년대의 미국인들은 요즘 보면 꽤 인간적이고 낭만을 알았던 것 같다. 준법과 법치를 외치는 21세기 아닌가. :p


높은 곳을 오르고, 외줄에 의지한 채 허공을 걷는 일은 프티에게는 인생의 집착이다. 실족한다면 좋아하는 일을 이루려다 맞는 죽음이 값지지 않느냐고 말하는 눈빛이 진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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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unters at the end of the world – werner herzog

친구 카이저 Henry Kaiser의 수중사진을 보고 남극행을 결심했다는 베르너 헤르초크 Werner Herzog는 남극 McMurdo 기지로 간다. 맥머도는 19세기 탐사선 테러에서 해도를 만든 사람, 시몬즈의 책에 나온 그 테러號다.

세상 끝에서의 만남

금융권에 종사하던 점보버스 운전사, 언어가 없는 곳의 언어학자, 잉카의 혈통을 주장하는 배관공의 손가락, ‘손가방’ 공연을 펼치는 골수 무전여행자, 펭귄을 관찰해온 무뚝뚝한 조류학자.. 묶인 데가 없어 남쪽 끝으로 떨어진, 전업 여행자에 부업으로 막일하는, 꿈을 꾸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영화는 가볍게 한가롭게 담은듯 보이지만 실제 그랬을리가. 감독은 집요하고 꼼꼼하고 독특한 사람 아닌가.

용암이 분출할때는 뒤돌아 달아나면 안된다. 허공에 뜬 분출물을 바라보며 낙하점을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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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zo: the life and work of dr. hunter s. thompson – alex gibney

헌터 S.톰슨 Hunter S. Thompson은 흥미로운 인물, 아이콘이다. 책이나 기사, 영화, tv에서 그 이름을 거듭 접하면 궁금해진다. 곤조 저널리즘 Gonzo Journalism은 대체 뭐란 말인가? (‘간조’에 가깝게 발음하기도 한다:p)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영화로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곤조 - 헌터 s.톰슨의 작품과 삶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태어난 톰슨은 홀어머니 아래 자랐다. 못사는 집 애가 잘사는 집 애들과 어울리다가 사고를 치면 혼자 남는 법, 어린 시절 인생의 쓴 맛을 보았다. 군대를 갔다와서 ‘위대한 개츠비‘를 수없이 타자기로 쳐보며 운韻을 터득했다는데, 여전히 독수리 타법. 온갖 사고와 술, 약을 탐닉하며 글로 먹고살려 바둥거리던 그가 잡은 전기는 6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의 오토바이 갱 지옥천사단 Hell’s Angles 취재였다. 몇 달을 어울리며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써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험한 꼴도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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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inconvenient truth – davis guggenheim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이미 옛날 얘기 같다. 누가 되든 별 차이가 없을거라고도 했었는데, 꼭 그 탓은 아닐지 모르지만 세상 참 많이 변했다.
sorryeverybody도 기억하시는가?

”한때는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었다고 이제는 농담을 하는 앨 고어가 지난 몇 년간 세계를 돌면서 한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 이 영화, 불편한 진실이다.

an inconvenient truth

트레일러는 여기서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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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we fight – eugene jarecki

eugene jarecki 의 다큐멘터리는 그 제목을 2차 대전시 카프라가 만들었던 일련의 프로파간다에서 빌렸다. 독전과 애국심 고취가 목적이었던 카프라의 영화와는 사뭇 다른 회의를 던지기 위해. (트레일러. 공식 사이트)

군산복합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미국의 군인출신 대통령 아이젠하워였다. 영화를 시작하는 퇴임연설에서 그는 수백만이 종사하고 있는 방위산업과 이해단체에 대한 경고를 했다. 무기와 돈의 만남은 미국을 영원한 전쟁상태로 몰아넣을거라는 경고는 현실로 이어졌다. 불과 몇년 전까지 전장은 미국 바깥이었지만.

9/11 에서 아들을 잃은 전직 경관의 고백을 통해 아마도 일반적인 미국인의 시각을 조금 담고, 그 귀에 전하려 애썼다. sekzer氏는 아들을 잃은 분노에 적으로 주어진 이라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메일을 보내어 무기에 아들의 이름을 쓰고 복수심을 잠시 달랜다. 그러나 이라크와 9/11 의 무관함을 부시가 인정하자 그는 배신과 허탈함에 치를 떤다.

방산업계와 군, 의회. 그리고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씽크탱크들. 군과 정부의 관계자들은 무기업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정치가들은 지역에 공장이 있다면 반대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적을 찾고, 공격을 하고, 소비를 하고, 미국이 주장하는 자유시장을 넓힌다. 그 곳에서 미국 기업이 돈을 벌기 좋도록. 월남전과는 달리 정보는 가공되고 통제되기도 하거니와, 자본의 논리와 이해득실을 따지면 진실은 그리 수익이 크지도 않다. 복잡하고 비관적인 현실보다 간단명료한 애국심 고취가 달콤하고 후련하게 잘 먹히는 것은 뭐. 통계와 기록을 쫓아가는 일은 흥미롭고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일은 과제를 던져준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무시한다면, 어떻게 접근하고 다루어야 하는 것일까?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방법은 과연 있는 것일까?

영화의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만이 볼 것이라는 지적은 여전히 맞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