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ependent 는 아마 옛날에는 롤러스케이트장이었던 모양이다. 크지도 화사하지도 않지만 편했고, 조명이나 음향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Author Archives: ethar
doctor rat – william kotzwinkle
william kotzwinkle 의 쥐박사 얘기는 1977년 세계 환상 소설로 꼽혔다고 한다.
실험실에서 인간을 위한 과학의 진보과 그에 대한 공헌을 역설하는 dr. rat 의 몸부림과 자연의 필사적인 질주가 겹쳐진다. 얄팍한 페이퍼백인데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가 않더란 말인데. 웃겨야 하는 이야기에 웃음이 잘 나지가 않았다.
이념에 사로잡혀 동족과 자연을 멸시하는 쥐박사는 실험실 베테랑, 각종 실험을 거치고 미로에서 돌아버린 자신은 학위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강변한다. 고양이 쥐생각보다 더 윗길.
혁명과 환경, 자연과 계급. 다양한 비유와 해석이 가능한 것은 이야기의 힘이라고 볼까.
인간의 이야기는 이 책에는 없다, 굳이 필요할지도 의문이지만.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 이 표지는 쓸만한게 안보여서, 결국 또.
답답하게 죄어드는데.. 이거 어떻게 풀어야 하죠?
brick – rian johnson
사물함에서 발견한 메모에 씌어진 거리로 나간 brendan 을 맞은 것은 공중전화. 옛 여자친구 emily 는 알수 없는 얘기로 도움을 청한다. (예고편)
심드렁하게 보이는 브렌든은 진지하게 괴짜 the brain 과 함께 실마리를 찾아 나서고, 어깨에 마약, 머슬카에 유혹, 주먹 세례를 만나게 된다. 고등학교 안팎에서 일어나는 얘기라는 말을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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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title 에 관한 소고
다른 사이트들 보다, 신문의 사이트들에 불만이 많다. 답답하다고 할까? 그 중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것을 하나 짚어 보자.
제목 – title .
html 을 손으로 쳐넣는 사람이 드물어지지만, <title> 이란건 페이지의 얼굴.. 은 아니라도 명찰 쯤 되지 않을까. 커다란 모니터에 브라우져를 쫘악 펼쳐놓고 플래쉬 애니메이션 돌아가는 것 보면 눈에 띄지도 않겠지만, 무시하지 마시라.
책갈피/북마크를 해도 그렇고, 딜리셔스에다 책갈피를 넣어도 그 설명은 우선 제목이 들어간다. 물론 설명을 고쳐넣고 바꿔넣을 수 있다지만, 그렇게 하기를 요구한다는건 매체로서의 자세가 아니잖을까.
해서, 간략하지만 바람직한 제목의 요소를 생각해 보자.
1.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클릭해서 보이는 기사와 무관하게 “@#&$ 신문 – 어쩌고” 를 띄워놓아서야 되겠나. 선정적이고 짜릿한 표제는 아니더라도, 어떤 기사인지는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 적절한 제목은 인구에 회자되는데 도움이 되는 공짜 차표다.
2. html 태그는 쓰지 마시라.
아쉬울지 모르지만, 제목에서는 태그가 무용지물이다. <B> 나 <I> 그대로 그냥 나올지니, 어설프게 보이기 십상이다.
3. 경로/분류를 줄줄이 엮지 말자.
웹 마스터나 설계자의 입장에서야 계층을 일목요연하게 나타내는 경로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물론, 페이지 꼭대기 한켠에 아담하게 자리하면 위로 넘어가고 찾기 좋기도 하다. 그러나, 자칫하면 길~다랗게 차지하게 된다. 왠만하면 두세 단계를 넘기지 않으면 좋을듯. 페이지의 경로를 굳이 다 반영할 필요는 없지 않나.
4. 순서의 문제.
두가지 스타일, 기사먼저와 조직먼저로 나누어 보자.
a) 냉차의 계절 돌아오다 – 유비통신
b) 사이비스포츠 : 계란말이의 비결
장단점이 있겠지만, 그냥 차례가 지켜지는 쪽과 내용이 우선하는 쪽으로 나뉘겠다. 어차피 책갈피/즐겨찾기에 폴더를 두게 마련이고, 다양한 태그를 붙이기도 하는 상황에서 첫눈에 인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a)기사먼저 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다양한 컴퓨터와 브라우져를 고려하고 미적 간결함과 창의 크기, 접근용이성, 다국어/해외독자에 대한 고려 등등 아쉽게 포기하는 주제들이 많고 많다. 인쇄매체가 짤막한 단신에 유리한 포탈을 쫓아 제 무덤을 파는 모습은 답답하다 못해 허탈하기도 하다. 그렇게 마음은 인터넷, 무형의 정보를 쫓지만 손끝은 여전히 굳어있어 목차에 따라 순서를 나누어 철한 서류뭉치를 따라간다. 거기에 예쁘고 알록달록, 그리고 무겁고 뻑뻑한 그림에 다양한 잡동사니를 광고주나 디자이너가 청하는대로 묶고 실으니.. 개편할 때 마다 정나미가 떨어지는게 이상하지도 않다.
모두들 목을 매는 ‘비즈니스 모델’ 말고, 적어도 있는 기사 쌓인 기사라도 잘 간수하시라. 한두번 하루이틀로 뭍힐 기사가 더 많지만, 기껏 특집 기사로 링크 생기고는 잊혀지기 아까운 기사들도 있으니 안타깝지 않은가.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 검색과 관련 기사, 유사 기사와의 연계까지 모색하면 좋겠지만.
on wings of song – thomas m. disch
우선 44쪽에서, 몇 년 간 여기 물을 먹으면서 깨달은 얘기 가운데 하나를 새삼스럽게 옮겨보자.
the prisoners ran their prison democratically, which meant, as it did in the bigger democracy outside, that almost everyone was cheated, held ransom, and victimized except for the little self-appointed army that ran the place.
도서관이 아니었다면 언제 보게 되었을지 모르는데, 1978 년 미국 초판 표지가 그 중 마음에 든다. 2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무뎌지지 않은 날카로운 통찰력이라니. disch. 통렬하다는 말이 오히려 좀 모자란다 싶다.
십대의 daniel weinreb, 운명의 장난처럼 감호소로 들어가고, 음악에 눈을 뜨게 된다. 적과 흑에서처럼, 재능있고 배고픈 젊은이의 야심은 매혹적이다. 신사란 예절을 배운 사람이 아니라, 폭력의 암시만으로도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이라는 화이팅(whiting)의 얘기나 21세기 암울한 미국의 서사도 흥미롭다.
하지만 이것은 이야기. 꿈과 희망, 좌절과 치욕, 사랑과 욕심, 삶과 비굴함, 오페라와 피안에의 갈망 보다 더 먼 이야기일까.
무언가를 바라고, 쫓는 동안 내딛는 발걸음에 당신은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갈림길을 몇번이나 지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꼼짝 않고 시간의 흐름을 짚는다고 아무것도 잃지 않을까?
노래는 끝나지 않고 맴돈다. the song does not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