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을 보내며

12월의 서울은 작년과 달랐다. 거리가 예전 만큼 붐비지 않았다. 여기저기 공사판은 여전했지만. 버스타기에 익숙해지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2008년, 나의 (비주류)문학적 영웅 두 사람을 만나 보았다.

원하는 바, 그 어떤 방향으로 더 나아갔다고 하지는 못하더라도 갈림길에 미적이지만 은 않았다. 가지 못할 길을 단념했다. 이건 나이를 더 먹었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셈인가.

에이미 맨을 알았으나 발견한 것은 올 해. 최근 앨범 @#%&*! SMILERS에서 ‘오늘 서른 하나 Thirty One Today’를 KCRW에서 들었다. 유튜브에 올라온 비디오는 노래말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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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in a supermarket, 소비의 고단함?

동전들고 사탕 부스러기 집을 때에는 내가 무얼 원하는지 알았는데, 시장이 超시장이 된 소비자 사회는 실로 혼란스럽다. 수퍼마켓 하면 떠오르는 노래, 클래쉬의 이 노래와 삐삐밴드의 것이다.

스스로 장을 보아야 하는 순간 부터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살 것인가, To buy or not to (if you dare not!) – 살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갈수록 자본주의의 본질로 가까와지고 같은 물건 같은데|인데, 가격은 다르고 뭐 이리 복잡한지. 너무 많은 선택은 혼란스럽다. 靜物은 아니더라도 느리게 산다는 것은 대사 패턴을 바꾸거나 하는 일이니 어렵다. 소비를 늘려 실패를 잊는 일은 요즘 경제적 상황에서는 어렵다. 그럼 마음을 바꾸는 일은?

인터넷, 전자상거래 해서 나아지는지 더 헷갈리는지 모르겠다. 널을 뛰는 환율은 더하고. 어쨌거나 의류건 전자제품이건 곤두박질하는 주가에 가격에 죽음의 세일이 이어진다고 한다. 삽질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연말연시 지갑을 잘 챙기시기를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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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ol – anton corbijn

비행기에서 본 영화 둘.

1970년대 펑크락과 1980년대 뉴웨이브 사이 포스트펑크라는 음악이 영미권에서 호응을 얻었다. 개인적으로 애정을 지닌 밴드가 꽤 있는데, 개중 조이 디비전, 일명 기쁨조라는 불온한 이름의 밴드가 있었다. 국내 발매반이 있었다면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건 이름 탓도 있으려나.

오일쇼크에 경제적으로 곤란하던 영국, 내성적인 이언 커티스와 친구들이 음악을 시작했다. 독특한 소리와 개성에 아찔한 현기증 같은 성공. 간질과 70년대 처방의 부작용으로 인한 심한 우울증. 일찍 결혼한 커티스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외면적인 성공에 혼란을 느꼈나 보다.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찾는가 했으나 스스로 납득할 결단이나 균형을 찾지 못하고 목숨을 끊는다, 미국 순회공연을 앞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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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bruges – martin mcdonagh

비행기에서 본 영화 하나. 개봉관에서 놓친 ‘브루쥐(에서)‘.


벨기에의 고풍스러운 도시 브루쥐. 그 곳에서는 브러허 비슷하게 발음한다고 한다. 경박한 젊은 킬러 레이와 아저씨 킬러 켄이 몸을 숨기러 온다. 여유롭게 관광을 즐기려는 켄과 좀이 쑤셔 못견디는 레이.. 하니 정훈이 만화가 어울릴지도.

배달사고(?)로 소년을 죽인 레이, 그들이 묵은 호텔의 임신한 여주인, 거리에서 만난 애 만 한 난쟁이. 다채로운 조연들과 우스꽝스러운 상황, 잡힐듯 한 구원과 업보의 블랙 코미디.

콜린 패럴의 영화는 그다지 본 적이 없는데, 괜찮은 연기를 보여준다. 브렌단 글리슨, 레이프 파인즈 역시 상극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그린다. 영화의 수상이력 가운데에는 감독 마틴 맥도너 Martin McDonagh의 각본상도 있다.

hell and earth – elizabeth bear

엘리자베스 베어의 프로메테우스 시대 연작. 스트랫포드 맨 하권.

16-17세기 2인칭 대명사 thee가 슬슬 사라져가고 복수 대명사 you가 격식을 차린 경우에 단수로도 쓰이지만 섞여 쓰이던 시기. 몇 해에 걸친 연구와 저작에 감사를 표하는 글도 길다. 몇몇 등장인물의 실재 모델이 무대에 섰던 장미극장이 그 첫머리에 나온다.

요정계와 지옥의 모험에 이어 지상으로, 둘째 권이 4,5막으로 이어진다. 셰익스피어는 병을 얻어 죽다 살아나고, 정치적 혼란 속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운명한다. 지상의 영국이 흔들리고 요정계도 표류한다. 영악한 야심가 베인즈의 음모에 빠져든 말로우와 셰익스피어. 그러나 장기를 두는 사람은 베인즈 만이 아니다. 수수께끼들이 풀리는 가운데 말로우의 무대가 펼쳐진다.

르네상스 영어와 현대어의 사이 어디 쯤, 글은 예스럽지만 어렵지 않다. 작가가 맺음말에 언급한 Early Modern English와 Modern English가 그 설명이거니. 시와 극, 왕권과 첩보, 요술과 주문 속에 역사와 환상으로 그려지는 세계. 두 주인공 말로우와 셰익스피어는 설득력을 얻는다. 실재한 작가들과는 비교하지 말자. 베어 말따나 그들 역시 수없는 장삼모사에게 고난과 역경을 안겨주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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