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 you for smoking – jason reitman

예고편으로 영화를 볼 필요가 없어지는 경우가 있고, 예고편이 효과적이서 지나치기 어려운 영화가 있다. 이 경우는 그 효과가 좋았다고 해야겠는데, 잘 만든 오프닝이 (아마도)새 담배갑을 뜯는 것 같은 감흥을 선사한다.

smoking

닉 네일러는 연초연구소의 대변인, 즉 담배회사들의 입인 로비스트다. 폐암환자의 소송이나 환경보호론자들의 공격에 시달리고, 비행기나 왠만한 건물은 금연. 이런 곤경(?)을 담배회사들은 어떻게 헤쳐갈 것인가?

조던이 농구하고 맨슨이 사람을 죽이듯 자신은 입으로 먹고 산다는 닉은 청산유수, 거기에 필수적인 도덕적 유연성(moral flexibility)을 갖추고 있다. 이런, 아들에게 일찍부터 가르칠 교훈은 아니잖아. 금발 미남 aaron eckhart 은 좀 낯선데, 에린 브로코비치에도 나왔다고 한다.

빠른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나아가는 재치있는 영화다. 옳고그름 보다 논쟁과 협상, 말재주와 기만으로 움직이는 사회를 풍자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그저 웃고만 말수 없는 까닭은, 영화가 그리는 모순이 현실에 그대로 있고 쉽게 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 기업과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현실에서는 담배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원작은 이 책이라고.

영화는 딱딱한 금연 캠페인이 아니어서, 죽음의 상인 3인조(m.o.d. – merchants of death)란 착상 재미있고 아들 조이와의 얘기들은 닉을 친근하게 만든다. 할리웃 에이전트 제프로 나오는 rob lowe 의 모습도 😀

세련된 외양에 날카로운 말재주로 승승장구하던 닉은 위기에 처하고, 일도 건강도 모두 잃은 것 같지만 또 살길을 찾는다. 뭐, 먹고 산다는게(paying the mortgate).. 말재주 글재주는 업그레이드나 재교육이 필요없는 평생 밑천이라니까. (-ㅅ-)

영화를 열고 닫는 노래를 고른 솜씨도 뛰어나다.

v for vendetta – james mcteigue

52세의 영국인 작가 alan moore 가 영화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줄 것을 요구했다는 영화다. 이쪽저쪽 얘기는 다르지만, 무어에 따르면 도둑맞은 작품에 연루되고 싶지 않다고. 대본을 읽어본 그는 혐오를 감추지 않았다. 무어의 원작은 80년대 말 미국에 연재되면서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해리포터가 자라면 이렇게, 별로 예쁜 꼴은 아니라나

키취로 범벅이 된 디스토피아. 1984와 오페라의 유령, 암굴왕 몽테크리스토. 매트릭스의 스미스氏 휴고 위빙의 연기는 칭찬할 만하다. 연극처럼 과장되었으나, 가면을 쓰고서도 감정을 전하는 연기, 매혹적인 테러리스트의 노선은 분명하지 않다. 그외 john hurt, stephen rea 등 연기는 모두 수준급. 화려한 화면이 오히려 조금 부담스럽다.

v vs. uk

9/11 과 미국에 대한 풍자인듯 하면서도 보수파도 즐길 만 하게 애매모호한 영화. 메시지의 부재와 함께 스타일의 과잉. 이비(evey/ev ;))와 v, v4v.

the libertine – laurence dunmore

나를 싫어하게 될겁니다.
지금 싫어할 뿐 아니라, 갈수록 훨씬 더 좋아하지 않게 될거라구요.

어둠 속에서 암울하게 나직하게 얘기하는 주인공은 john wilmot, 17세기 런던의 시인, rochester 백작을 연기하는 것은 johnny depp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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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복고로 자리에 앉은 찰스2세의 총애를 받지만 이 난봉꾼은 명예나 권력, 예의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술과 육체에 심하게 탐닉한 이 사내의 열정은 현실에 있지 않았다. 희극의 무대가 그가 찾은 안식처.

그의 주장에 따르면, 당신을 싫어하는 사람에는 두 부류가 있다. 어리석은 자와 질투하는 자. 어리석은 자는 5년이 지나면 당신을 좋아하겠지만, 질투하는 자는 영원히 싫어하리라. 헤, 멋들어진 허세다.

방탕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않은 이 사내, samantha morton 이 연기한 여배우 elizabeth barry 에 주목하여 연기에 대해 지도를 하겠다고 나서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은 때문이었을까, 남들과 다른 그녀의 주장과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거듭된 추방과 사면에도 국왕의 신뢰는 이어지지만, 술과 향락에 찌든 영혼은 신랄한 조소로 자신을 위태롭게 한다. 결국 매독으로 죽음을 맞는 그는 임종을 앞두고 무신론자임을 밝혔다고 한다.

laurence dunmore 의 첫 영화는 꽤 야심찬 소재를 골랐다. 진흙범벅 런던의 거리와 극장을 재현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터. 아쉽게도 뎁의 어둡고 가망없는 난봉꾼 연기 말고는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모튼의 연기는 좋은 편이고, 찰스2세를 연기한 말코비치나 백작부인 파이크, 시종 코일도 나름대로 괜찮긴 한데. 흥미로운 면면이 있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지 않다. 작정하고 망가지는 인물 만 그리면 뒤로 갈수록 대책이 안서지 않나.

다시 어둠 속에서 그가 재차 묻는다,

do you like me now? do you like me..?

why we fight – eugene jarecki

eugene jarecki 의 다큐멘터리는 그 제목을 2차 대전시 카프라가 만들었던 일련의 프로파간다에서 빌렸다. 독전과 애국심 고취가 목적이었던 카프라의 영화와는 사뭇 다른 회의를 던지기 위해. (트레일러. 공식 사이트)

군산복합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것은 미국의 군인출신 대통령 아이젠하워였다. 영화를 시작하는 퇴임연설에서 그는 수백만이 종사하고 있는 방위산업과 이해단체에 대한 경고를 했다. 무기와 돈의 만남은 미국을 영원한 전쟁상태로 몰아넣을거라는 경고는 현실로 이어졌다. 불과 몇년 전까지 전장은 미국 바깥이었지만.

9/11 에서 아들을 잃은 전직 경관의 고백을 통해 아마도 일반적인 미국인의 시각을 조금 담고, 그 귀에 전하려 애썼다. sekzer氏는 아들을 잃은 분노에 적으로 주어진 이라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메일을 보내어 무기에 아들의 이름을 쓰고 복수심을 잠시 달랜다. 그러나 이라크와 9/11 의 무관함을 부시가 인정하자 그는 배신과 허탈함에 치를 떤다.

방산업계와 군, 의회. 그리고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씽크탱크들. 군과 정부의 관계자들은 무기업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정치가들은 지역에 공장이 있다면 반대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적을 찾고, 공격을 하고, 소비를 하고, 미국이 주장하는 자유시장을 넓힌다. 그 곳에서 미국 기업이 돈을 벌기 좋도록. 월남전과는 달리 정보는 가공되고 통제되기도 하거니와, 자본의 논리와 이해득실을 따지면 진실은 그리 수익이 크지도 않다. 복잡하고 비관적인 현실보다 간단명료한 애국심 고취가 달콤하고 후련하게 잘 먹히는 것은 뭐. 통계와 기록을 쫓아가는 일은 흥미롭고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일은 과제를 던져준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무시한다면, 어떻게 접근하고 다루어야 하는 것일까?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의 관심을 얻고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방법은 과연 있는 것일까?

영화의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만이 볼 것이라는 지적은 여전히 맞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