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뱃속에서 할 일들 things to do in the belly of the whale – dan albergotti

벽 재기. 갈비 세기. 날짜 표하기.
숨구멍 너머 푸른 하늘 보기. 낚시 배의
부서진 나무로 모닥불 피우기. 연기 신호 연습.
오랜 친구들을 부르고, 목소리의 먼 메아리에 귀기울이기.
일정 정리하기. 해변을 꿈꾸기. 희미한 불빛을 찾아 사방을
살피기. 보고서 기록하기. 인생의 만 가지 선택 하나하나 평가하기.
자기혐오의 순간을 견디기. 그런 증거를 찾고. 없애기.
쥐죽은듯 조용히 하고, 고래의 움직임과 출렁이는 물소리를 듣기.
심장 고동을 듣기. 희망과 함께 삼켜져 이곳에 있다는 것에,
기다리며 쉴 수 있음에 감사하기. 향수에 젖기. 여태껏 한 일들과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기. 고요한 밤의 바다 한 가운데에서
물을 더듬던 일을 기억하기, 발가락은 거듭거듭 아래, 저 아래, 새까만 심연을 향하며.

Things to Do in the Belly of the Whale
by Dan Albergotti

Measure the walls. Count the ribs. Notch the long days.
Look up for blue sky through the spout. Make small fires
with the broken hulls of fishing boats. Practice smoke signals.
Call old friends, and listen for echoes of distant voices.
Organize your calendar. Dream of the beach. Look each way
for the dim glow of light. Work on your reports. Review
each of your life’s ten million choices. Endure moments
of self-loathing. Find the evidence of those before you.
Destroy it. Try to be very quiet, and listen for the sound
of gears and moving water. Listen for the sound of your heart.
Be thankful that you are here, swallowed with all hope,
where you can rest and wait. Be nostalgic. Think of all
the things you did and could have done. Remember
treading water in the center of the still night sea, your toes
pointing again and again down, down into the black depths.

thirteen (black man) – richard k. morgan

시장용병 포크너의 이윤전쟁 Market Forces를 썼던 리처드 모건 Richard K. Morgan의 근작 13은 영국에서는 Black Man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행복하지 않은 미래를 통해 현재를 조명하는 그의 시각은 여전하다. 22세기의 지구는 화성을 개척하고 미국은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공화국연합 Confederated Republic과 서방 식민권 Western Nations Colony Initiative 등으로 분열되었다. 매력과 특혜에도 불구하고 개척지는 험한 곳.

화성발 우주선에 문제가 생기고, 끔찍한 사건의 현장에 식민권 COLIN 수사관 세비 Segvi Ertekin가 파견된다. 수수께끼의 범인 메린 Allen Merrin을 찾아, 부모와 불화한 터키 회교도인 그녀와 형제 컴플렉스를 겪고 있는 상관 톰 노튼 Tom Norton이 ‘예수땅 Jesusland’ 플로리다 형무소에서 마셀리스를 빼내면서 숨은 그림 찾기가 시작된다.

줄기세포나 복제양 수준이 아니라 다양한(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유전학적 실험이 미래에 없으리라 자신할 수 있을까? 제13변종 13 variant은 그렇게 탄생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토론하고 합의하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야성, 인류가 정착하여 농경을 시작하면서 외면과 부적응으로 사라져간 원초적인 수렵인, 원시인을 되살려 엄격한 통제 속에서 살육기계로 훈육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립으로도 비유되는 非인간 제13형의 삶은 순탄하지 않다. 운좋게 화성에서 로또맞아 돌아온 칼 마셀리스 Carl Marsalis는 UN에 고용된 청부업자/자객. 무자비한 손속에 참선수양을 한듯한 독백은 좌백의 등장인물을 연상하게 한다 😉 사회가 요구하고 선호하는 품성은 끊임없이 증명되지만, 종종 무시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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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16 百鬼夜行抄 – 이마 이치코 今市子

백귀야행 16 이마 이치코 今市子의 백귀야행 16권. 듣던대로 예전의 맛을 어느 정도 찾은듯 하다. 대략 13년이 되도록 계속되는 이야기. 느리고 산만한 가운데 담담하게 그려지는 인간의 집착이 매력이다. 관심없고 무심하지만 잡귀가 꼬이는 주인공 리쓰 飯嶋律는 색깔이 없는게 특징인데, 나름 개성이 있다.

일본적인 색채를 부담없이 그려내고, 커다란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다. 전통적인 향수를 무리없이 담아내는 것이 작가의 저력이 아닐까. 이이지마 飯嶋 집안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도 흐릿하고 악의도 여간해서는 독하게 보이지 않는다. 恨은 아니라고 할까.

을지로 순환선 – 최호철

을지로 순환선 서울은 크다, 넓다, 사람이 많고 집도 차도 회사도 학교도 돈도 너무나 많다. 역사와 유적과 개발과 변화가 들어차 넘치는 곳이 서울이다. 그런 서울을 그린다는 일을 온전하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어딘가 기사에서 보고 을지로순환선을 책갈피에 접은게 2006년인데, 책이 이제서야 나왔다.

만화일까 그림일까. 만화는 단순하게 어쩌면 간결하게 이야기를 담고 칸으로 나누어 전하는 것인가 보다. 그러면 그림은 꼭 나눌 수 만은 없는 빛깔을 화폭에 올리는 것일까. 그림이라고 할지 만화로 보아야할지 그 사이를 오가는 것일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꼭 나눌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야기그림’이라고 했을지도.

얼마나 많은 그림을 그렸을까. 빼곡하게 거리와 버스와 집들이 있고 사람들이, 일상의 조각들이 숨을 쉰다. 그 색깔과 선이 시선을, 사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창은 다시 나의 눈에 보이는 세상에 겹쳐진다. 굳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도회가 아닐지라도 그림 속에서 세상을 본다.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우석훈

'명랑'으로 21세기 초 한국사회의 열쇠말 가운데 하나가 된 88만원 세대. 저자인 우석훈이 기고했던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노무현 시대의 비망록’ 같은 의미라는 설득에 내었다는데, 한데 묶어놓으니 맥이 통해서 기사로 접했던 글도 새로운 맛이 있다.

1부인 ‘고공비행, 노무현 시대의 하늘을 날다’가 날카롭다. 기대와 실망, 막연한 미련을 확 깨게할 얼음장같은 비판은 지금도 여전히, 어쩌면 더 의미가 있다. 순수를 잃은 좌파, 도덕을 버린 우파. 잘못된 판단과 정책, 합의없는 실행, 민중의 위기. 후련한 글솜씨. 왜 통쾌하지 않고 서글퍼지나?

‘인물열전’이라고 묶은 2부는 20대를 응원하며 맺는다. ‘녹색환경’을 이야기하는 3부가 흥미로운데, 물질과 속도에 사로잡힌 사회의 대안을 이명박의 서울을 뒤집어가며 찾는다. ‘심시티‘보다 ‘그린시티’, 녹색도시가 더 낫고 재미있다는 것을 그려주는 사용설명서랄까. “(돈있는)너만 부자되세요” 하는게 아니라 구민, 시민들의 편익을 찾고 합의를 구하는게 바로 정치다. 지금 뜨거운 쟁점이 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에 관해서도 길지 않지만 쉽게 얘기한다. “미국 국민들도 다 그거 먹는데, 왜 한국만 난리냐!”는 고위직 인사나 정책 결정자들의 사고도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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