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title 에 관한 소고

다른 사이트들 보다, 신문의 사이트들에 불만이 많다. 답답하다고 할까? 그 중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것을 하나 짚어 보자.

제목 – title .

html 을 손으로 쳐넣는 사람이 드물어지지만, <title> 이란건 페이지의 얼굴.. 은 아니라도 명찰 쯤 되지 않을까. 커다란 모니터에 브라우져를 쫘악 펼쳐놓고 플래쉬 애니메이션 돌아가는 것 보면 눈에 띄지도 않겠지만, 무시하지 마시라.

책갈피/북마크를 해도 그렇고, 딜리셔스에다 책갈피를 넣어도 그 설명은 우선 제목이 들어간다. 물론 설명을 고쳐넣고 바꿔넣을 수 있다지만, 그렇게 하기를 요구한다는건 매체로서의 자세가 아니잖을까.

해서, 간략하지만 바람직한 제목의 요소를 생각해 보자.

1.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클릭해서 보이는 기사와 무관하게 “@#&$ 신문 – 어쩌고” 를 띄워놓아서야 되겠나. 선정적이고 짜릿한 표제는 아니더라도, 어떤 기사인지는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 적절한 제목은 인구에 회자되는데 도움이 되는 공짜 차표다.

2. html 태그는 쓰지 마시라.
아쉬울지 모르지만, 제목에서는 태그가 무용지물이다. <B> 나 <I> 그대로 그냥 나올지니, 어설프게 보이기 십상이다.

3. 경로/분류를 줄줄이 엮지 말자.
웹 마스터나 설계자의 입장에서야 계층을 일목요연하게 나타내는 경로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물론, 페이지 꼭대기 한켠에 아담하게 자리하면 위로 넘어가고 찾기 좋기도 하다. 그러나, 자칫하면 길~다랗게 차지하게 된다. 왠만하면 두세 단계를 넘기지 않으면 좋을듯. 페이지의 경로를 굳이 다 반영할 필요는 없지 않나.

4. 순서의 문제.
두가지 스타일, 기사먼저와 조직먼저로 나누어 보자.

a) 냉차의 계절 돌아오다 – 유비통신
b) 사이비스포츠 : 계란말이의 비결

장단점이 있겠지만, 그냥 차례가 지켜지는 쪽과 내용이 우선하는 쪽으로 나뉘겠다. 어차피 책갈피/즐겨찾기에 폴더를 두게 마련이고, 다양한 태그를 붙이기도 하는 상황에서 첫눈에 인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a)기사먼저 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다양한 컴퓨터브라우져를 고려하고 미적 간결함과 창의 크기, 접근용이성, 다국어/해외독자에 대한 고려 등등 아쉽게 포기하는 주제들이 많고 많다. 인쇄매체가 짤막한 단신에 유리한 포탈을 쫓아 제 무덤을 파는 모습은 답답하다 못해 허탈하기도 하다. 그렇게 마음은 인터넷, 무형의 정보를 쫓지만 손끝은 여전히 굳어있어 목차에 따라 순서를 나누어 철한 서류뭉치를 따라간다. 거기에 예쁘고 알록달록, 그리고 무겁고 뻑뻑한 그림에 다양한 잡동사니를 광고주나 디자이너가 청하는대로 묶고 실으니.. 개편할 때 마다 정나미가 떨어지는게 이상하지도 않다.

모두들 목을 매는 ‘비즈니스 모델’ 말고, 적어도 있는 기사 쌓인 기사라도 잘 간수하시라. 한두번 하루이틀로 뭍힐 기사가 더 많지만, 기껏 특집 기사로 링크 생기고는 잊혀지기 아까운 기사들도 있으니 안타깝지 않은가. 거기에 한 발 더 나아가 검색과 관련 기사, 유사 기사와의 연계까지 모색하면 좋겠지만.

on wings of song – thomas m. disch

on wings of song우선 44쪽에서, 몇 년 간 여기 물을 먹으면서 깨달은 얘기 가운데 하나를 새삼스럽게 옮겨보자.

the prisoners ran their prison democratically, which meant, as it did in the bigger democracy outside, that almost everyone was cheated, held ransom, and victimized except for the little self-appointed army that ran the place.

도서관이 아니었다면 언제 보게 되었을지 모르는데, 1978 년 미국 초판 표지가 그 중 마음에 든다. 2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무뎌지지 않은 날카로운 통찰력이라니. disch. 통렬하다는 말이 오히려 좀 모자란다 싶다.

십대의 daniel weinreb, 운명의 장난처럼 감호소로 들어가고, 음악에 눈을 뜨게 된다. 적과 흑에서처럼, 재능있고 배고픈 젊은이의 야심은 매혹적이다. 신사란 예절을 배운 사람이 아니라, 폭력의 암시만으로도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이라는 화이팅(whiting)의 얘기나 21세기 암울한 미국의 서사도 흥미롭다.

하지만 이것은 이야기. 꿈과 희망, 좌절과 치욕, 사랑과 욕심, 삶과 비굴함, 오페라와 피안에의 갈망 보다 더 먼 이야기일까.

무언가를 바라고, 쫓는 동안 내딛는 발걸음에 당신은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갈림길을 몇번이나 지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꼼짝 않고 시간의 흐름을 짚는다고 아무것도 잃지 않을까?

 
 
 
노래는 끝나지 않고 맴돈다. the song does not end..

thank you for smoking – jason reitman

예고편으로 영화를 볼 필요가 없어지는 경우가 있고, 예고편이 효과적이서 지나치기 어려운 영화가 있다. 이 경우는 그 효과가 좋았다고 해야겠는데, 잘 만든 오프닝이 (아마도)새 담배갑을 뜯는 것 같은 감흥을 선사한다.

smoking

닉 네일러는 연초연구소의 대변인, 즉 담배회사들의 입인 로비스트다. 폐암환자의 소송이나 환경보호론자들의 공격에 시달리고, 비행기나 왠만한 건물은 금연. 이런 곤경(?)을 담배회사들은 어떻게 헤쳐갈 것인가?

조던이 농구하고 맨슨이 사람을 죽이듯 자신은 입으로 먹고 산다는 닉은 청산유수, 거기에 필수적인 도덕적 유연성(moral flexibility)을 갖추고 있다. 이런, 아들에게 일찍부터 가르칠 교훈은 아니잖아. 금발 미남 aaron eckhart 은 좀 낯선데, 에린 브로코비치에도 나왔다고 한다.

빠른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나아가는 재치있는 영화다. 옳고그름 보다 논쟁과 협상, 말재주와 기만으로 움직이는 사회를 풍자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난다. 그저 웃고만 말수 없는 까닭은, 영화가 그리는 모순이 현실에 그대로 있고 쉽게 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 기업과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현실에서는 담배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원작은 이 책이라고.

영화는 딱딱한 금연 캠페인이 아니어서, 죽음의 상인 3인조(m.o.d. – merchants of death)란 착상 재미있고 아들 조이와의 얘기들은 닉을 친근하게 만든다. 할리웃 에이전트 제프로 나오는 rob lowe 의 모습도 😀

세련된 외양에 날카로운 말재주로 승승장구하던 닉은 위기에 처하고, 일도 건강도 모두 잃은 것 같지만 또 살길을 찾는다. 뭐, 먹고 산다는게(paying the mortgate).. 말재주 글재주는 업그레이드나 재교육이 필요없는 평생 밑천이라니까. (-ㅅ-)

영화를 열고 닫는 노래를 고른 솜씨도 뛰어나다.

sea and cup

예전에, 수 년 전에는 아침을 해먹었답니다.
매일 아침 한 공기 밥을 해서 먹고 문을 나섰죠. 멀건 국도 끓였던 것 같군요. 버스를 타고 다리를 건너 출근하기도 했고 몇 정거장 걸어서 출근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부터는 커피 한 잔으로 바뀌었습니다.
크림은 말고, 우유를 약간 탄 따듯한 커피 한 잔. 일하는 건물 말고 주차장을 나서 지나는 건물 카페에서 늘 들고 문을 나섭니다. 한적한 아침 하늘을 보며 한 모금 들이키고 걸음을 재촉하죠.

재미있는 것이, 커피 맛이 아침 기분을 좌우합니다. 원두 가루가 섞이거나 미지근하거나 하면 미간을 찌푸리게 되거든요. 그리고 괜히 커피 맛이 탐탁치 않은 경우가 있는데, 그건 간밤이건 꿈이건 출근길이건..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어디를 가건 안심을 하게 하는 한결같은 상호와 간판의 장점도 있고, 그쪽을 선호하거나 신봉하는 사람도 있죠. 그리고 그와는 사뭇 다른 취향이나, 개의치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커피란게 없으면 못사는 음식은 분명 아니지만, 그런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적당하게 한가하고 지나치게 분주하지 않은 가게에, 어느 정도 퉁명스럽고 약간은 친절한 점원이 맞아주는 것도 다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거겠죠.

a small cup of
호사스런 커피는 평일에는 잘 마시지 않습니다.

a piece of

다른 사람 카메라, 자동 카메라 셔터를 눌러본 적이야 있습니다만 처음으로 찍어본 필름, 인화지가 손에 느껴지는 느낌이 낯선 자극을 줍니다.

the brief history of the dead – kevin brockmeier

the brief history of the dead 살아있는 자와 그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자, 그리고 기억하는 이 없이 죽은 자. 그렇게 세 가지로 나누는 방법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james loewen – lies my teacher told me)

6장에서 풍선남(風船男 / baloon man :p) 이야기를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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