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out – connie willis

코니 윌리스 Connie Willis의 등화관제 Blackout은 시간여행 역사활극의 세번째 장편이다. 둠즈데이 북개는 말할 것도 없고가 번역되어 있으니 이 책과 다음권 경보해제 All Clear도 나오지 않을까.

시간여행이 가능한 2060년. 영국 옥스포드에서 젊은 史家들은 출장 준비로 분주하다. 목표점과 시대에 관련된 지식과 관습을 암기하랴, 당대인들에게 어색하지 않을 옷차림을 점검하랴. 시간여행을 담당하는 연구실 역시 정신없이 바쁜데 던워디 교수의 까다로운 성품에 일이 더 어렵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낙하점을 고르고, 역사를 바꿀지 모를 분기점을 피해야 한다. 역사적 지식으로 무장하고, 그 시대 사람들을 관찰한다. 폴리 처칠 Polly Churchill과 메러피 Merope, 마이클 Michael은 1940년의 영국의 이런저런 상황을 답사하러 각자 떠난다. 도착하고 보니 뭔가 좀 이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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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 – ted chiang

테드 창 Ted Chiang의 신작 중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명주기 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는 예쁘게 만든 책이다. 지하출판사 Subterranean Press에서 나온 150페이지 하드커버는 표지와 지도, 삽화가 아기자기하다.

준비했던 취업면접에서 바람을 맞은 애나 알버라도 Ana Alvarado는 친구 로빈이 일하는 신생기업 블루 감마 Blue Gamma에서 일하게 된다. 동물원에서 일했던 경험을 높이 산 것인데, 일종의 아바타인 디지엔트 digients, 디지털 지구같은 환경에 사는 디지털 유기체 digital organisms들을 돌보는 것이 일이다.

데이터 지구 Data Earth는 게임이나 다양한 활동이 벌어지는 가상의 공간이다. 컴퓨터 하드웨어의 처리능력이 나아지면 충분히 가능할텐데, 블루 감마는 뉴로블래스트 Neuroblast라는 염색체 엔진을 개발하고 그에 기반한 디지엔트들을 만들고 있다. 고정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인지 발달이 가능한 아바타들을 만든다고 생각하자. 생물의 염색체가 그렇듯이 다양한 개체가 나오다보면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한다. 새로 나온 디지엔트는 시각적인 자극의 이해, 사지를 움직이기, 사물의 반응 같은 일들을 다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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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ck doctrine – naomi klein

냉전시대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보다 우월한 체제다. 공산주의는 사악하고 민주주의는 아름답다. 시장은 신성한 것이어서,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거를수 없는 대세였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살기는 더 좋아졌는가?

나오미 클라인 Naomi Klein의 책 쇼크 독트린 Shock Doctrine은 세계화된 자유시장이 민주적으로 승리했다는 그 믿음에 문제를 제기한다.

태풍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뉴올리언즈에서 ‘깨끗하게 시작할 기회’를 이야기한 사람들(재개발의 추억?) 가운데에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이 있었다. 현대사의 사건들을 연구하고 재해현장을 탐방한 클라인은 노벨상을 탔던 경제학자 프리드먼과 시카고 학파가 깊이 관여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연관을 찾았다. 충격 학설 쇼크 독트린.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겪은 우리는 WTO, IMF 같은 기구들이 요구하는 구조조정 패키지를 안다. 사영화, 규제철폐, 공공지출 삭감 등으로 자국의 시장을 활짝 열어젖히라는 요구를 우리는 겪었다.

1970년대 칠레는 군사 쿠데타로 프리드먼이 꿈꾸던 시장경제를 실험할 첫 기회였다. 쿠데타의 충격은 경제적인 충격 요법의 발판이 되고, 고문실의 충격은 반대자들에게 공포를 안겨주었다. 군부와 경찰이 KUBARK 매뉴얼의 방법들을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클라인은 충격 학설의 논리를 고문에 비유한다. CIA는 “강제적인 심문”이라는 말을 쓰는데, 감각을 빼앗고 물리적인 자극으로 신체를 압도하는 “연화과정”을 거치면 정신적인 태풍을 겪고 이성적인 사고나 방어의 능력을 잃는다. 이런 충격의 상태에서 죄수는 정보, 진술, 전향서 등 심문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줄 준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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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l – rob epstein, jeffrey friedman

롭 엡스타인과 제프리 프리드먼의 영화 하울 Howl앨런 긴즈버그 Allen Ginsberg의 시 하울에 바친 헌사. 시와 그 시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어 그렸다.


1955년 식스 갤러리에서의 시 낭송회.
1957년 하울의 출판을 둘러싼 외설 재판.

이 두 가지가 영화의 중심이다. 젊은 시절의 긴즈버그를 연기한 것은 제임스 프랑코 James Franco, 뿔테 안경이 어울린다. Continue reading

finch – jeff vandermeer

제프 밴더미어 Jeff VanderMeer의 소설 핀치 Finch는 흥미롭다. 곰팡이 누아르 Fungal noir라는 리처드 K. 모건의 추천도 그렇고, 차이나타운, 벌거벗은 점심, 챈들러에 러브크래프트까지 언급하는 데야,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 없다.

앰버그리스는 말 그대로 곰팡이가 핀 도시다. 20년 간의 내전을 겪은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버섯같은 그레이캡.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버섯과 곰팡이가 곳곳에 피어나는 도시의 잔해에서 형사 핀치는 살인사건을 맡는다. 정체불명의 사내와 허리가 잘린 그레이캡.

포자와 결합한 반편이 Partial들이 사진기 같은 눈으로 감시를 한다. 진균총을 휴대한 형사들의 책상에는 통신관 혹은 기억구, 살아있는 입같은 구멍이 있어 그레이캡 헤레틱과 보고서를 주고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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