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미술이 만나다 1945~2000 – 임석재

임석재 교수의 건축과 미술의 연관 비교사 2권.

아르브뤼, 팝아트, 아르테 포베라, 미니멀리즘, 환경미술, 공공미술, 상대주의, 해체주의, 신표현주의에서 원시주의미디어 아트까지. 2차 대전 이후의 반세기는 복잡다단하다. 폴락, 올덴버그, 게리, 쿨하스, 스미스슨.

반발이든 재해석이든 모두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 책은 좀 아쉽다. 도판을 쓰는 비용 탓에 화보가 많지 않기도 하고, 현대 미술과 건축의 최근까지의 활동과 흐름을 책 한권에서 다루기도 어렵다.

좀 다르고 열에 차있지만 다니엘 리버스킨트의 17가지 건축 이야기도 흥미롭다. Continue reading

스포츠 코리아 판타지 – 정희준

프레시안에서 발칙한 ‘어퍼컷’을 날리는 정희준이 우리나라 운동이야기를 책으로 냈다. 스포츠맨십, 페어플레이 하지만 가슴으로 전해지는 열기에 핏대올리는 현상은 국적불문. 역사가 말해주듯 운동은 정치적이다.

직접 달리거나 구경을 하거나, 경기는 사람들을 몰입하게 하고 흥분하게 한다. 남녀노소, 저마다 다른 삶의 조건을 넘어 함께 환호하고 탄식하는 짧은 순간. 매체의 발달과 인터넷으로 그 전파력은 대단하다. 스포츠 팬은 아니지만 이야기가 재미있다. 식민지, 군정에서 해방 이후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투지에 불타는 열혈의 한국인.

일제시대에서 해방, 군사독재에서 프로스포츠와 해외진출까지. 자전거대왕 엄복동, 콧수염이 멋진 장사 여운형 (사이트에는 불만), 신금단.. 탁구, 레슬링, 마라톤, 축구, 권투.. 사람들은 다양한 종목을 알게되고 즐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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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미술이 만나다 1890~1940 – 임석재

건축과 미술, 다르면서도 같은 둘을 바라보는 임석재 교수의 시각 첫째 권. 20세기 전반부를 다루었다.

아르누보, 미래주의, 표현주의에서 입체파, 순수주의, 데 스테일, 바우하우스, 기능주의, 아르데코, 러시아 구축주의, 다다, 초현실주의와 미국 모더니즘을 거쳐 나치파시즘까지.

창작의 관점에서는 상이하나 해석에서 만나는 미술과 건축은 흥미롭다. 사진, 그림과 함께 명멸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공들인 저작에 꼼꼼하게 만든 책이 깔끔하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역사를 조망하는 일은 즐겁다. 얼마전 뉴욕에서 구경했던 라이트호퍼를 연관지어 볼 기회를 주기도 한다.

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

‘비현실적 음모론’이 예언으로 다가오는 현실이다.

‘승리’를 곧 ‘성공’으로 풀이하는 뉴라이트 세계관은 역사를 보는 눈만이 아니라 현실을 보는 눈도 한쪽으로만 열어준다. 진보 진영의 선거 패배는 곧 그들의 실패라고 뉴라이트는 본다. 패배자들이 했던 모든 일을 승리자가 뒤집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도, 지금 ‘강부자’도 뉴라이트의 눈에는 승리자들이며, 따라서 성공한 자들이다. 따라서 친일파 비판은 실패한 자들의 시기심일 뿐이며, 부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려는 종합부동산세는 “잘못된 세금체계”인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종합부동산세의 타당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성공한 자들을 대접해주기는커녕 부담을 지우려들다니, 올바른 세금 체계일 수 없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 방안도 그렇다. 대거업 소유자들은 그들의 눈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능력이 입증된 사람들이다. 그들의 더욱 큰 성공을 돕는 것이 정치다. 범죄를 사면해주고, 세금을 줄여주고, 규제를 풀어주고, 사업 기회를 만들어주고,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편하게 해줘야 그들이 신나서 사업을 잘한다. 그렇게 해서 파이를 키워놓아야 열등한 인간들도 부스러기나마 얻어먹을 수 있다. 성공할 능력도 없는 자들을 배려한 전임 대통령은 어떤 보답을 받았나? 성공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보답도 할 줄안다. 표로든, 돈으로든.

우승열패의 논리가 정당화하는 약육강식은 문명이 아니다. 대놓고 빌붙는 것은 지식인이 아니다. 졸렬한 비겁을 과학의 이름을 빌어 남에게 강요하는 뻔뻔스러움이다.

조선잡기 朝鮮雜記 – 혼마 규스케

조선잡기 역사曆史에서는 맥락과 시각을 배제할 수가 없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 라고도 하고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도 하지 않나. 다양한 기록과 생략을 가지고 ‘현재’의 맥락으로 보는 것이 역사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500년 왕조의 말기, 제국주의 외세의 눈에 비친 초상/단상. “일본의 지사들이… 건너왔다” 志士라는 말의 의미가 조금은 다를 것 같은데. colonist가 혹 비슷한 말은 아닐까? 객관적인 기록으로 받아들일 일은 드물겠지만 단편적 기록이 흥미롭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일본’은 여전한 열쇠말로 기능한다. 민족 마케팅은 업계를 막론하고 상당한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제국주의의 지배를 경험한 나라에서 보는 과거는 공과가 엇갈린다. 분열되어 있던 문화와 언어를 통합하고 기술적, 상업적 개발에 도움이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왜곡과 파괴, 문화적 몰이해와 수탈에 치를 떨기도 한다. 갑론을박 다양한 분석이 펼쳐지고 정리되는 데에는 시간과 품이 드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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