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훈의 소설 ‘은닉’의 표지에는 체스 말이 연막에 둘러싸여 있다. 뒤쪽은 체스판 같은 격자무늬.
주인공 ‘나’는 기술자다. 애매한 연방의 조직에서 죽음을 다루는 현장 기술자인 나는 11년 만에 처음으로 받은 휴가를 추운 겨울의 체코에서 보내고 있다. 컨설턴트에서의 조직체계가 연상되는 설정은 근미래 정도의 기술수준에 냉전 첩보물의 향기를 풍긴다. 냉정하고 치밀해야 할 나는 의외의 비공식적 의뢰에 흔들리고 안개 속의 체스판에서 깨어난다.
“왜?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어서? 평소 하던 대로 안 움직이면 되지.”
“그러고 싶겠지만 사실 그것도 쉽지는 않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전화랑 인터넷에서만 자료를 긁어모으는 게 아니니까. 뭐, 그래도 그건 네 말대로 훈련을 좀 하면 개선될 여지가 있는데, 문제는 취향이야. 그건 절대 숨길 수가 없거든.”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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