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orrow’s everyday – charles stross by damien g walter@guardian

가디언에 올라온 Damian G Walter스트로스 인터뷰. 설렁설렁 옮겨보자.


“가상현실의 킬러 애플리케이션은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사진 잘 나왔네)

SF작가 찰스 스트로스와 이메일을 주고받던 중 – 5년 전 만 해도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가상면담은 꽤 낯선 일이었을게다 – 문자 통신은 이제 거의 해묵은 느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트로스의 소설에서 발췌했을 법 한 깨달음이다. 요즘 세상에 이메일 테니스는 일상적이라 지루하고, 기술이 규범이 되어 생활을 바꾸는 현상은 그의 소설에서 되풀이되는 주제다. 최첨단 기술에 치중하지만, 스트로스의 세계관은 환상적이면서도 일상적이다.

그는 한가지 공식을 반복하는 상업쟝르의 압력에 반하여 과학소설(SF)의 다양한 하위쟝르를 다룬다. “옛날부터 전업작가가 되려고 마음먹었지요,”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쉽게 싫증내는 성격이라, 비슷한 책을 더 쓰라는 요구를 강하게 거절했습니다.” Singularity Sky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뿐 아니라, 러브크래프트風 괴기물+영국 냉전 첩보물 연작, 젤라즈니파이퍼 H Beam Piper를 연상케하는 “팬터지 아닌 팬터지”까지.

여태 가장 호평받은 작품들은 순수 SF인 엑셀레란도 Accelerando유리집 Glasshouse이지만, 그는 아직도 전적으로 “과학 소설 작가”라는 딱지에 불편해 한다.

“많은 과학 소설 작가들은 인간조건에 대한 내성의 도구나 순수 예술 형식이라기 보다는, 쟝르를 발상의 문학 a literature of ideas으로 생각하는 문학적인 독학생입니다. 만족스러운 설명은 아니지만요.” 그러나 문학이 아닌 생의학과 전산을 공부한 탓에 그의 소설은 언제나 과학으로 회귀한다. “어쩔 수 없어요. 자연스러운 배경에 만족하기 보다는 배운 걸로 괴이한 연구실의 미로를 만들고 주인공들을 헤매게 만드는 충동이겠지요.”

그러나 최첨단의 발상을 탐사하기에 문자는 작정하고 한물 간 수단이 아닌가? 대본이나 게임도 있는데? 소설이어야 하는 이유는? 어릴때부터 강박적인 독자였던 스트로스의 답은 – 창작과정의 통제 creative control. “소설은 화자가 일을 거의 다 해야하는 드물게 남은 서술형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자율성이 SF소설이 영화나 게임에 없는 정교한 아이디어를 다루게 한다.

휴고상을 탄, 근미래를 다룬 최근작 정지상태 Halting State를 보자. 이 책은 대규모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 속에서 용과 오크가 저지른 실제 은행 절도를 다루고 있다.

스트로스에 따르면, 가상현실은 윌리엄 깁슨 William Gibson이 소설 뉴로맨서 Neuromancer에서 사이버스페이스 cyberspace라는 말을 고안하면서부터 상투어구 cliché가 되었지만, 소설 밖에서 우리는 가상현실의 첫 개화를 목격하고 있다. WOW(World of Warcraft)같은 MMORPG에서.

그가 말한다. “가상현실의 킬러 애플리케이션 killer application은 (다른)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면, 거주자들이 오는거죠.”

정지상태에서 스트로스는 MMORPG 10년과 다른 기술을 그렸지만, 예측에서 놓친 일들을 확신한다. 단지 “미래는 언제나 예상보다 훨씬 이상하죠 – 아마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 보다”.

스트로스에게는 이미 진부하지만, SF작가들이 예측한 가장 괴상한 미래는 아마 유일점 the Singularity일 것이다. 버너 빈지 Vernor Vinge와 과학자들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할 이 개념은 간단하게 시작했다: 컴퓨터에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면, 더 강력한 컴퓨터, 더 강력한 인공지능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유일점 the Singularity – 기술의 변화가 너무 빨라서 인간존재를 되돌릴 수 없이 바꿔놓는 지점까지 가속한다. 대단한 발상이다. 그러나 스트로스가 먼저 지적했듯이, 늘 과학적인 엄밀함으로 다루어지지는 못했다.

“잘못 쓰이고 오해되고, 빈지의 발상을 둘러싸고 엉뚱한 일들이 불어났죠. 나노기술처럼, 유일점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요술가루가 되었어요. 켄 맥클리오드 Ken McLeod가 말했듯 ‘샌님들의 황홀경 the rapture of the nerds‘ 칸이랄까요.”

그러나 그 생각들이 이미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의 나노기술은 조단위의 산업이다. 인공지능은 아직 멀더라도, 증강지능 augmented intelligence은 이미 10년 전 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과 업무를 바꾸어 놓았다.

아직 그의 저술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지금 쓰는 소설은 일이백 년 전으로 거슬러가는 전통의 이야기입니다. 구조가 빅토리아 시대의 독자에게 과한 어려움은 아닐거예요.” 스트로스에 따르면, 기술의 혁명적인 변화는 보다 주류소설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소설은 인간조건의 연구가 아닌가요. 과학이 소설에 선사할 한가지 식견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조건의 정의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인간조건이란 불변, 영원히 일정하게 남을 운명이 아니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기후변화에 걱정하지 않고 굴 속에서 살고 있겠죠. 주류소설의 작가들이 내적인 지평을 독점하는 만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과 절차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서할 수 없이 근시안적인 자세가 아닐까요.”

주류소설에 대한 그의 진단에 강력하게 반대할 사람이 많으리라. 그러나 독자층이 늘어날수록, 스트로스는 과학소설 애독자 뿐 아니라 그의 이야기가 탐험하는 온라인, 사회망으로 연결된 socially-networked 가상 세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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