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21st century: faq – charles stross

21세기가 된지도 벌써 꽤 되었다. 전 지구가 이토록 밀접해질줄 몰랐다. 미래4년 고난이라니. 스트로스의 21세기 FAQ를 옮겨본다. 댓글도 흥미롭다.

Q: 예측할 수 있는 것은?
A: 매주 신과학자 New Scientist에서 읽는 것들.
기후변화
인구과잉이 낳은 경작과잉으로 인한 사沙폭풍 dust bowl
알려지지 않았지만 긴요한 분야에서의 자원고갈 (석유는 제외; 쉽게 채굴할 인산염은 60년 어치 뿐이다, 이게 없으면 비료는 없다)
개발도상국가들이 선진국처럼 인구증가를 조절하면서 일어날 우습지만 행복한 부대효과 – 디플레이션, 집값폭락,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첨단연구의 침체
영장류의 밀집으로 인한 일반적인 말싸움

아, 알려지지 않은 미지를 빼놓을 수 없다. the unknown unknown

Q: 알려지지 않은 미지? 럼스펠드 말씀인가?
A: 아니, 전례없고 예측하지 못한 일() 얘기가 아니다. (중략)
21세기에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현상을 볼 것이 분명하다. 생명공학, 나노공학, 인공지능, 기후변화 그리고 컨테이너, 바코드, RFID 칩을 능가할 공급/보급 혁명, 정치 등에서 존재적 경이가 나오지 않을까. 그 외 짐작도 할 수 없는 괴이하고 이상한 일들이 나올 것이다.

Q: 흠, 큰 그림을 본다면?
A: 2005년 무렵 처음으로, 인류가 현저하게 도회적인 동물이 되었다. 이전까지 대다수는 시골에서 농업에 종사해 왔다. 그 이후 50%를 조금 넘는 이들이 도시에 살고, 도회화는 가속적이다. 추세가 이어진다면 2100후 인구분포는 영국과 비슷할 것이다. 대략 99%가 도시나 부도심에 사는.
이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역학, 부의 창출, 농경(수직농장 같은 고밀도 식량 생산, 버려진 시골이 야생과 자연으로 돌아가는 현상이라면 고무적이다). 동력, 이동수단, 정보 그리드 등의 설계와 배치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인구분포(이촌향도, 농경사회보다 낮은 출산율).
65억의 인구가 창조적 도시에 사는 2109년과 도시에 33억 화경에 32억이 나뉜 2109년의 차이는 거대하다.

Q: 우주개척?
A: 꿈깨시라.
체제붕괴를 모면한다고 가정하면, 아마 월면기지는 생길 것이다. 누가 되었건 99.999%의 인류는 지구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화성탐험까지는 가능하겠지. 의료상의 근본적인 변혁이나 물리법칙을 갖고놀 물리/공학적 전기가 없는 한, 원숭이통조림으로는 우주개척은 고사하고 목성까지도 가기 힘들다. (퉁명스러운 시각은 토성아이들을 보시라.)

Q: 유일점 the Singularity?
A: 꿈깨시라.
우주개척처럼 샌님들의 황홀경 역시 아주 불운하지 않다면 99.999%의 인류와는 무관하다. 일어나서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면, 모든 계획은 무의미하다. 일어나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이 해수면상승/원유부족/생명공학인공지능흰개미에게세 우리를 구원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는 것은 제대로 나쁜 생각이다. 유일점에 대한 최선의 대책은 파스칼식 내기를 역으로 적용하고 구원은 커녕 일어나지 않으리라 가정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다.

Q: 정치. (사회주의 | 자본주의 | 리버태리아니즘 | 파시즘 | 민주주의)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것은?
A: 아마도 해당 없음.
보기는 모두 베스트팔리아 조약과 그에 이은 유럽의 계몽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사법제도와 무역의 경계가 비교적 유지되는 독자적인 관리주체로서의 국가의 등장이 조약의 특징이다. 현재는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주권과 사법제도로 가는 것 같다. 현대 영국의 주요 법령 중 70%가 EU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배타적인 사법적 독립을 고집하는 미국의 경우에도 놀랍게 많은 연방법이 WTO조약 절차의 결과에 기초한다. 경제적 자립은 극도의 사영화 없이는 달성도 유지도 어렵다. 북한(고립과 자족)과 짐바브웨(국제제재 속에 쇠약)가 예가 되겠다.
인터넷 시대의 이데올로기 극점은 아직 정의되지 않았다. 브루스 슈나이어는 21세기의 뜨거운 감자가 “통신과 감시가 널리퍼진 ubiquitous 시대에 사생활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고 주장한 반면, 사생활은 이미 사망했다는 주장도 있다. 무어의 법칙모든 것을 기록할 무제한 능력을 현실에 가깝게 하는걸 보면, 감시의 불가피성은 논하고 싶지 않다. 문제는 그 도덕/교훈이다.

Q: 종교?
A: 삶의 방식을 규정하고 특정 기술을 금지하는 교조적 신앙은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하는 능력을 크게 위협할 수 있다. 적극적인 신도들 뿐이라면 나머지는 아마 살아남을 것이다. 종교적 믿음이 확장된다면(예를 들어 권력을 얻고 종교적 금기를 국가전체를 운영하는 법제화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예 #1: 미국은 배아줄기 세포의 연구를 금지하여 파킨슨병 같은 증상의 치료법 연구가 어렵게 했다. 예 #2: “예언자는 마시는 자 뿐 아니라 다른 데 쓰는 것도 금하셨다” 사우디의 판결은 알콜을 연료로 쓰지 못하게 했다. 교조주의와 현대기술의 충돌치고는 경미한 예다. 21세기에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운이 좋은거다. 가능한 예: 바티칸에서 피해경감 전략을 비난하며 불법약물에 대한 논쟁에 뛰어들었다. 1980년대와 90년대의 콘돔반대운동이 아프리카의 AIDS위기에 기름을 끼엊었던 것처럼 사태를 악화시킬지 모른다.

Q: 인류가 살아남을까?
A: 아니 –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는 다 죽는다. 개체로 보나 종으로 보나. 한편으로 나는 무엇보다 안락하고 긴, 즐거운 인생을 살기 바란다. 당신도 역시!

미사일 격차도 떠오른다. 무엇보다 세번째 문답에 관심이 간다. 도회화와 밀집이 우리가 느끼지 못한 변화를 내포한 것일까. 자원과 식량의 문제는 심각하고, 화석연료가 그 첫번째가 아니다. 삽질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일은 이렇게 많다.

Grapevine Fi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