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entity theft는 우리말로 ‘개인정보 도용’이 될까. 골치 아프고 끔찍한 일이지만, 웜홀과 전송기술이 등장하는 유리집의 세계에서는 더 심한 일이 된다. 물질적인 존재 뿐 아니라 의식과 기억까지 그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기억적출 시술을 받은 로빈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외양이나 성별을 바꾸고 잊고 싶은 기억을 지우는 신인류/탈인간 시대에서도 흔하지 않은 경우다. 회복시설에서 상담을 하던 중 그는 문화실험 ‘유리집 glasshouse‘에 참가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는다.
유리집 실험은 참가자 개인에게 무작위의 신체와 익명성을 부여하고 과거 시점의 제한된 재현 속에서 3년 가량 살도록 한다. 기록이 소실된 ‘암흑시대(20세기후반-21세기초)’의 연구를 명분으로 그 시대의 규범과 문화에 부합하는가에 따라 점수를 가감한다. 감독관이 부여하는 규범과 상벌에 적응하는 피실험자들은 우리의 현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도처에 깔려있는 감시. 나는 방금 암흑시대 원형감옥 테마 호텔에 투숙한거야!
Ubiquitous surveilllance. I’ve just checked into a dark ages panopticon theme hotel!
남자였던 로빈은 유리집 속에서 주부 리브가 되고, 원하지 않은 역할을 강요받는다. 밖에서 만난 케이를 찾으려 애쓰지만,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참가자들의 면면과 갈등 속에서 실험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악몽과 함께 기억이 되살아난다.
기억과 역사를 조작하는 황색벌레 curious yellow는 무척 재미있는 발상이다. 감염자가 매개가 되어 전파되는 바이러스.
신선한 발상과 물음이 가득하면서도 이야기 위로 넘치지 않는다. 늘어지지 않고 성큼성큼 나아가면서 매듭을 엮는 기분이랄까. 여태껏 읽은 스트로스의 책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 유리집의 전편 쯤 되는 악셀레란도. 뉴로맨서는 너무 20세기 아닐까. 컴퓨터 하는 사람을 아찔하게 하는 근미래. 친절한 설명으로 맨프레드를 설명하기까지 해. 넘치는 아이디어를 특허내어 자유로이 쓰도록 풀어주는 지적 방탕아, 방랑자. 지적 소유권 전문가들에게 맨프레드는 전설적인 존재다. 당신의 전자사업을 지적 소유권 규정이 허술한 곳으로 옮기고 허가에 따르는 귀찮음을 피하는 사업방식을 특허낸 사람이다. 그는 문제영역의 기본적인 기술에서 순열로 조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특허내는데 유전적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방법을 특허낸 사람이다. 더 나은 쥐덫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더 나은 쥐덫의 집합. 그의 발명 가운데 대략 1/3이 합법적이고 1/3이 불법, 나머지는 합법이지만 입법공룡이 깨어나 커피냄새를 맡고 경기를 하는 순간 불법이 될 것이다. 리노 Reno에는 맨프레드 맥스 Manfred Macx는 ‘캘커타를 먹어치운 유전적 알고리즘(지적 소유권의 세르다 아르직 Serdar Argic 혹은 보바키 Bourbaki 수학기계)’으로 무장한 익명 해커 테러분자들이라고 장담하는 특허 법률가들이 있다. 샌디에고와 레드먼드의 법률가들은 맥스는 자본주의의 기반을 해꼬지하려는 경제 파괴분자라고 강변하고, 프라하의 공산주의자들은 빌 게이츠와 교황의 사생아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