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strangecraft – charles stross

스트로스가 조금 오랜만에 글을 올렸다.

Dr Strangecraft, I presume?

존재론적 호러로 시작하는 글을 대충대충 옮겨보자.

H.P.러브크래프트가 호러를 창시한 것은 아니지만 오픈소스 호러 신화의 시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에 쥐가 날 만큼 고대의 방대한 우주(비샵 어셔가 아니라 에드윈 허블의 천체학 덕에)에 정신없을 지성체들이 가득한데 우리는 그들 발치의 먼지에 불과하다. 이 종말론 속에서 러브크래프트는 서늘한 묵시록의 결말을 만들었다. 어느날 별들이 늘어서고 죽지 않고 잠들었던 존재가 깨어나 지상으로 돌아오리가, 형용할 수 없는 악몽이 산 자들에게 닥치리라. 뭐 그런거다.

예를 들자면.

생각하면 러브크래프트식 신화 속 고대의 귀환은 서구 신화의 진부한 예와 공통된 점이 있다. 내 세대의 성장에 그림자를 드리웠던 핵전쟁의 공포와 아마게돈, 묵시록, 과학소설로 비틀면 유일점. (까닭없이 똘똘이들의 휴거일까)

물론 차이점이 있다. 유일점에 관한 한, 별들이 온 다음은 생각할 수 없다. 인류는 주위의 우주를 체록할 지성계 먹이사슬의 우생종이 아니다. 사실은 그들 발 밑의 먼지니까. 기독교 종말론은 꽤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들의 천국, 나머지는 불신지옥) 열핵 아마게돈은 소설에서 정당한 징벌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는 무시무시하게 묘사된다. (영화 스레드나 소설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

그러나 좋은 농담인가?

내가 보는 호러란 인간조건을 까짓것 뒤틀어 보는 문학양식이다. 보통 불편한 일이 되지만(작가가 원하면 구원의 여지도 있지만) 우리 자신에 대해 뭔가 이야기해 준다.

원자 수준으로 얇게 피칠을 하면 어떤 소설에도 호러를 적용할 수 있다. 기묘하지만, 그런 면에서 호러는 유머, 유머 연애담, 유머 하드보일드 탐정물과 같이 동작한다. 그러면 둘을 섞으면 안될까? 유머 위에 호러로 묵시록을 조소하여 인간적인 일상으로, 아니면 반대로. 좋아하는 큐브릭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 통했다. 잔혹보관소 The Atrocity Archives제니퍼 공시장 The Jennifer Morgue에서 내가 시도한 것이기도 하다.

전자는 1998년 습작 냉냉전 The Colder War으로 거슬러 간다. “냉냉전”은 별로 우습지 않다. 내가 자란 핵전쟁의 공포를 표현하려 더듬거렸고 러브크래프트식 괴물은 멋들어지게 손에 닿았다. 원조 냉전 속에 자란 이들에게 그 존재론적 두려움은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소설을 쓸 수는 없다, 생존자가 없는 학살에는 구원이란 없으니까. 그리하여 “잔혹보관소 The Atrocity Archives”의 어두운 웃음과 조금 가벼운 “제니퍼 공시소 The Jennifer Morgue”가 나왔다.

파들어가고 싶지 않은 까닭으로 나는 이 두 소설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희미하게 둘 쯤 생각하고 세번째를 썼다. 그러나 학동 유머는 연작물을 이어나갈 동기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세탁소 연작의 구조를 보강할 주제를 찾고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 인간조건을 가지고 비틀면 어떻게 될까?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교수대 유머를 양념으로 쓴다. 끔찍한 일을 날마다 겪자면 유머는 냉엄한 생필품이다. (위생병과 지내본 사람들의 증언)

이 우주 속에서 유머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부조리극으로 만든 까닭을 스탠리 큐브릭에게 물어보라. 상황과 의미가 합치하지 않을때 부조리가 발생한다. 큐브릭은 부조리를 통해 핵전쟁을 해부하고 범인들의 평범하고 좀스러운 동기를 비웃었다. 그러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폭탄 이후를 비웃지 않았다. 버섯구름을 배경으로 “다시 만나요 We’ll meet again”를 부르며 양쪽을 외면한 아이러니로 끝난다. 그 폭탄은 농담의 핵심이었다. 생존가능한 묵시록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러브크래프트식 종말소설은 고대인의 귀환 이후를 진정으로 모색하지 않았다, 인류의 잔재는 커녕. 2000년 이후 과학소설의 유일점처럼, 접근금지다.

(에헴) 이것은 강령이 아니올시다. 쓰고 있고 더 쓸 것들의 설명입니다. 아마 이 혼성어로 설명이 될겁니다: 스트레인지러브크래프트式 (바쁘시다면 스트레인지크래프트式) 소설. 최근 과학소설 SF이 유일점을 썼듯 신화의 종말론적 공포를 활용하는 것이 목표랍니다. 영혼이 구부러지는 상황에서 인간조건을 조명하자는 것이지요.

자, 그럼 굴 속으로 기어들어가 주접을 떨테니 실례합니다…


근황 겸 소설관을 피력한 셈이다. 라일락酒 들이키고 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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