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박노자


다양한 ‘허브’와 동아시아 공영권에 대한 이야기가 정치와 사회에서 오가기 시작한 것이 몇 년이 되었다. 머리말에서 박노자가 이야기하듯 ‘지역 문명’은 차별과 배제의 방편으로 이용된 역사가 부담스러운 말이다.

거리에서 조금 다른 이방인을 보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는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낯선 생각, 낯선 습관을 대하는데 서툴다. 남들과 다르다고 찍힐까봐 조심해 왔다. 그 사고의 틀을 벗어나는데 시간이 걸리고 노력이 필요하다.

그 틀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전통 혹은 정체성이 모두 자연스럽게 생기고 굳은 것은 아니다. 박노자는 역사 속에서 그 틀에 대한 물음을 찾는다. 기존 가치, 권력에 대한 반란, 민중의 진실한 평화를 찾아 혁명을 꿈꾼 사람들, 일상 속에서의 반란한 소수자들.
권력에 절하지 않고 종교와 학문에서 이상을 추구한 사람들. 강자, 승자를 좇던 사람들의 약자에 대한 멸시와 착취. 알려진 인물들의 이중성. 잊혀진 인물들.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를 찾아본다.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그런데 문부성이 스마일스의 ‘모범적 인간’ 이야기를 중세의 효행도처럼 아예 판화로 찍어 소학교 학생들의 필독서로 지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마일스에 의하면, 사업가, 관료, 학자가 아닌 근면하고 성실한 장인도 성공할 수 있고,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재운과 재간이 좋아 돈을 많이 번 부자나 고관대작도 존경받을 만한 인간이지만, 제한된 월급으로 사는 근면, 성실하고 검소한 모범생형 노동자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정된 소득 획득이라는 형태로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고, 개인의 성공 이데올로기를 부정하는 집단 저항이나 직업윤리를 위반하는 등 체제에 대한 부정행위만 하지 않으면 스마일스가 인정하는 진짜 인간, 즉 ‘진짜 남자’가 될 수 있었다. 자본주의에 첫발을 내딛고 자유민권운동부터 농민반란까지 온갖 집단 행동의 화염에 둘러싸였던 1870년대 일본의 현실에서 절실히 필요한 책이었던 것이다!
허망한 저항에 신경 끄고 돈이나 벌라는 훈계가 일제와의 편안한 유착을 꿈꾸는 일제시대 조선의 유산계급에도 유효했던 <자조론>은 개화기부터 조선에 부분적으로 소개되었다. 1918년에는 최남선이 완역해 단행본으로 내기도 했다. 해방 뒤 경무부장으로서 친일 경찰 출신의 부하를 옹호했던 조병옥이 “일제시대 먹고 살기 위해 친일을 한 프로잡(pro-job)은 처벌하기 곤란하다. 다만 그 이상의 친일을 한 프로잽(‘Pro-Jab’ 즉 pro-Japanese)이 문제다”라고 했을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속한 계급의 상식이 된 스마일스의 논리에 입각해 있었다. 제국이 조선 민족을 말살하든 말든 나만 성실하게 일한 대가로 월급을 받으면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다.

권력이나 돈, 언론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어쩌면 주류보다 소수자에 가깝지 않을까. 소수자의 외침에 호응은 못하더라도 주류의 시각으로 거리를 두는 모순은 서글프다.

2 thoughts on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박노자

  1. 뒤늦게 링크 신고합니다. 올려주시는 글들을 항상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