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3일. 고인의 명복을 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생역정에 대한 복기가 한창이다. 생을 닫은 뒤 돌아보니 그의 영과 욕, 공과 과가 조금은 더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남의 눈에 비친 ‘노무현’은 더 이상 그의 운명을 좌우하지 못한다. 그의 인생은 이제 남은 이들의 거울이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보지 못하는 실착을 두는 일이다.
서울의 벽은 사람과 죽음에 대해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 이걸 청출어람이라 해야 하나. 제복으로 내몰린 젊은이들의 가슴에 응어리가 질텐데, 그 책임은 누가 지나.
+ 최근 G20 시위에서 숨진 톰린슨氏의 경우에서도 영국 경찰은 염치없이 감추지 만은 않았다. 한국 경찰은 어떤가, 죽음의 슬픔을 틈타 철거를 감행하는 서울은.
집회나 시위에 관한 법을 따지는 경우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그 규제대상에 관혼상제 등의 관습적 의례행사가 제외된다는 점이다. 이는 프랑스의 1935년법이나 독일의 1953년법을 비롯하여 범세계적으로 인정하는 것임을 상기시키기 전에 상식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니 지난번의 노제는 물론 지금 시민단체가 열려고 하는 추모제에도 당연히 해당된다. 그런 경우에는 집시법상의 신고의무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아무런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없는데도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 문제다. 어떤 압제의 시대에도 이러지는 않았다.

[...] 대한민국 경찰은 한술 더 뜬다. 법적인 근거는 있나, 수집, 보관, 파기에 따른 절차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