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서울의 벽

2009년 5월 23일. 고인의 명복을 빈다.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가 이집트의 왕 사메트니우스를 붙잡았을 때, 그는 이 포로에게 모욕을 주고자 했다. 캄비세스는 페르시아의 개선행렬이 지나는 거리에 사메트니우스를 세워두라고 명령했다. 사메트니우스는 자신의 딸이 물동이를 인 하녀의 모습으로 제 앞을 지나는 것을 봐야 했다. 모든 이집트인이 이를 보고 슬퍼했지만 사메트니우스만은 눈을 땅에 떨어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 아들이 처형당하기 위해 행렬 속에 함께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로행렬에서 자신의 하인 가운데 하나를 보는 순간, 그는 손으로 머리를 치면서 가장 깊은 슬픔을 표했다.”

farewell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생역정에 대한 복기가 한창이다. 생을 닫은 뒤 돌아보니 그의 영과 욕, 공과 과가 조금은 더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남의 눈에 비친 ‘노무현’은 더 이상 그의 운명을 좌우하지 못한다. 그의 인생은 이제 남은 이들의 거울이다. 이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보지 못하는 실착을 두는 일이다.

서울은 사람과 죽음에 대해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 이걸 청출어람이라 해야 하나. 제복으로 내몰린 젊은이들의 가슴에 응어리가 질텐데, 그 책임은 누가 지나.

+ 최근 G20 시위에서 숨진 톰린슨氏경우에서도 영국 경찰은 염치없이 감추지 만은 않았다. 한국 경찰은 어떤가, 죽음의 슬픔을 틈타 철거를 감행하는 서울은.

+ “누구의 광장인가”

wallofseoul

+ [박홍규 칼럼]광장을 열어라, 당장

집회나 시위에 관한 법을 따지는 경우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그 규제대상에 관혼상제 등의 관습적 의례행사가 제외된다는 점이다. 이는 프랑스의 1935년법이나 독일의 1953년법을 비롯하여 범세계적으로 인정하는 것임을 상기시키기 전에 상식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니 지난번의 노제는 물론 지금 시민단체가 열려고 하는 추모제에도 당연히 해당된다. 그런 경우에는 집시법상의 신고의무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아무런 법적 문제가 있을 수 없는데도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 문제다. 어떤 압제의 시대에도 이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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