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두번째 배트맨은 길고 어둡다. 고댐의 암흑가를 삼키려는 홍콩의 라우 Lau는 야심만만하게 시작한다. 갱들을 농락하는 메이드 인 차이나 中國産. 그러나 시작에 불과하다.
이상과 투지에 찬 신임 검찰청장 하비 덴트 Harvey Dent가 부닥친 벽은 끈적끈적하다. 브루스 웨인, 레이첼, 경찰청장 고든과 덴트는 그 속에 빠져드는 곤경에 처한다. 누구나 갖고 어디나 있는 통신망과 007이 부러워할 위험한 장난감들. 보기에도 얼얼한 주먹질 발길질. 허공을 날고 뛰고 거리를 찢어발기는 추격전이 짧지 않다.
기술의 발전은 만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샌디에고에서 해마다 열리는 만화전람회 코믹콘 Comic Con은 유래없는 성황을 이루고 있다. 소설에서나 그려지던 기술이 일상에 들어차면서 젊은 세대들은 SF, 환상 문학에 훨씬 익숙하다. 흑기사 배트맨이 놀라운 호응을 얻은데는 이런 행사를 통한 홍보전략이 주효했다. 만화에서 나온 영화가 성공하여 게임, 옷, 이런저런 기념품이 날개돋친듯 팔린다. 그리고 원작 역시 찍기 무섭게 동이 난다. 그리고 2008년 코믹콘 풍경을 휘어잡은 것은 바로.. 이거다.
히스 레저 Heath Ledger의 조커 Joker는 엔트로피의 화신. 갈베스턴 Galveston의 사육제 같은 가면을 쓴 졸개/희생양들. 논리적인 설명을 거부하는 자아의 분열은 참한 구경거리 만은 아니다. 극적인 니콜슨의 조커와는 사뭇 달라 브랜든 리 Brandon Lee의 크로우도 떠올렸다. 영화사에 남을 악역이다.
자신은 궁리를 하지 않는다는 조커는 존재 자체가 ? 물음표. 그날그날 빤한 일상의 파괴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악에 맞서 싸운다는 단순한 논리에 총천연색 만화경으로 현기증을 선사한다. 짐작할 수 없는 도발에 배트맨 웨인은 발 디딜 곳을 잃는다.
레이첼, 덴트와의 삼각관계를 끊는 비극으로 등장하는 二面鬼 투페이스는 불타버린 남자. 그 불꽃을 앞세우고 배트맨은 흑기사를 자처한다. 애초의 바램에서 멀리 떨어져 버렸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지만 많이들 다시 찾을 것 같은 영화.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길다랗게 나오는 만큼 야심에 찬 빽빽한 영화, 그 욕심과 기력이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