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는 누구 – 도로시 L. 세이어즈

19세기 말 태어난 도로시 L.세이어즈 Dorothy L. Sayers는 격정에 찬 삶을 살았다. 사랑과 실연, 세계대전, 소설과 비밀. 큰부리새가 나오는 기네스 맥주 광고. 추리소설의 ‘황금시대’ 네 여왕 가운데 애거서 크리스티 다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만화주인공이 되어도 손색이 없을 귀족 탐정 피터 윔지 경. 수완이 좋은 조수 번터, 이상에 찬 형사 친구 파커.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구조는 다 갖춘 셈이다.

꼼꼼한 묘사와 친절한 수다는 하드보일드의 반대편. 한량 탐정의 20세기 초 과학 수사는 그 자체 뿐 아니라 시대상으로도 흥미롭다. 자연스럽게 옮긴 번역이 정갈하다. 참하게 읽기 좋은 활자와 편집, 제본도 괜찮다.

살인과 수수께끼 풀이를 넘어 인간본성과 감정에 대한 탐구가 추리소설의 맛이라면 이성과 직관이 그 도구다. 예스러운 신사들의 체스 경기처럼 친절한 범인의 예의.

seven for a secret – elizabeth bear

seven for a secret 뉴 암스테르담 속편 ‘비밀의 7‘는 100페이지 조금 넘는 아담한 하드커버. 조금 섬찟한 표지는 전편에 이어 패트릭 아라스미스 Patrick Arrasmith의 그림이다. 1938년 프러시아 점령치하의 영국. 흡혈귀 wampyr 가운데에서도 원로가 된 세바스티앙은 나이든 애비 아이린, 피비와 함께 잭의 꿈을 기억한다. 히틀러가 없는 프러시아, 영국소녀동맹의 두 여학생이 세바스티앙의 흥미를 끌고 그는 모종의 비밀계획에 다가간다.

보도 너머 거리는 몇 마디 깊이 빗물에 잠겨 있었다. 겹치고 덮인 동그라미들에 토막나고 뒤섞인 문양들. 수천 가지에서 한가지 일을 골라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역사, 국가도. 누구라도 한가지 물건의 테두리를 그리고, 그 안에 온전한 별개의 것 처럼 따로 놓을 수 있다. 그러나 지도는 영역이 아니라서, 그 임의의 선 하나에 다가가는 순간 그 선이 가로지르는 갖가지 일들을 보게 된다. 인과라는 거미줄에는 모든 선택과 반작용이 하나하나 엮여있어서 끊지 않고 한 가닥 만 끌어낼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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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미술이 만나다 1890~1940 – 임석재

건축과 미술, 다르면서도 같은 둘을 바라보는 임석재 교수의 시각 첫째 권. 20세기 전반부를 다루었다.

아르누보, 미래주의, 표현주의에서 입체파, 순수주의, 데 스테일, 바우하우스, 기능주의, 아르데코, 러시아 구축주의, 다다, 초현실주의와 미국 모더니즘을 거쳐 나치파시즘까지.

창작의 관점에서는 상이하나 해석에서 만나는 미술과 건축은 흥미롭다. 사진, 그림과 함께 명멸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공들인 저작에 꼼꼼하게 만든 책이 깔끔하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역사를 조망하는 일은 즐겁다. 얼마전 뉴욕에서 구경했던 라이트호퍼를 연관지어 볼 기회를 주기도 한다.

new amsterdam – elizabeth bear

new amsterdam - elizabeth bear 2007년 나온 엘리자베스 베어의 소설 뉴 암스테르담 New Amsterdam랜달 개릿다아시 경 연작을 떠올리게 한다. 20세기 초, 미국이 아니라 영국의 식민지 新암스테르담. 영국을 떠나온 애비게일 아이린 개릿 Abigail Irene Garrett(이름도 개릿이다)은 마법사에 수사관이다.

직함도 어마어마해서 D.C.I. Detective Crown Investigator, 국왕이 임명한 수석 조사관. 자의로 유배 중인 그녀는 나이를 알 수 없는 흡혈귀 돈 세바스티앙 디 울로아 Don Sebastien de Ulloa를 만나게 된다. 19/20세기 대체역사와 과학마법과 흡혈귀가 나오는 추리소설 :p

비행선과 살인사건, 총독과 왕자, 분리주의자와 혁명가에 테슬라 박사 마저 등장한다. 흡혈귀 wampyr에 대한 규칙은 이야기마다 다르게 마련인데, 여기에서는 햇빛에 노출되면 타버린다. 잠이 없고 늙지 않는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 더운 피에서 생명력을 얻는 이들은 일종의 귀족집단에 비유된다. 종자처럼 사람들을 거느리고 관리하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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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비판 – 김기협

‘비현실적 음모론’이 예언으로 다가오는 현실이다.

‘승리’를 곧 ‘성공’으로 풀이하는 뉴라이트 세계관은 역사를 보는 눈만이 아니라 현실을 보는 눈도 한쪽으로만 열어준다. 진보 진영의 선거 패배는 곧 그들의 실패라고 뉴라이트는 본다. 패배자들이 했던 모든 일을 승리자가 뒤집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도, 지금 ‘강부자’도 뉴라이트의 눈에는 승리자들이며, 따라서 성공한 자들이다. 따라서 친일파 비판은 실패한 자들의 시기심일 뿐이며, 부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려는 종합부동산세는 “잘못된 세금체계”인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종합부동산세의 타당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성공한 자들을 대접해주기는커녕 부담을 지우려들다니, 올바른 세금 체계일 수 없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 방안도 그렇다. 대거업 소유자들은 그들의 눈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능력이 입증된 사람들이다. 그들의 더욱 큰 성공을 돕는 것이 정치다. 범죄를 사면해주고, 세금을 줄여주고, 규제를 풀어주고, 사업 기회를 만들어주고, 방법을 가리지 않고 편하게 해줘야 그들이 신나서 사업을 잘한다. 그렇게 해서 파이를 키워놓아야 열등한 인간들도 부스러기나마 얻어먹을 수 있다. 성공할 능력도 없는 자들을 배려한 전임 대통령은 어떤 보답을 받았나? 성공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보답도 할 줄안다. 표로든, 돈으로든.

우승열패의 논리가 정당화하는 약육강식은 문명이 아니다. 대놓고 빌붙는 것은 지식인이 아니다. 졸렬한 비겁을 과학의 이름을 빌어 남에게 강요하는 뻔뻔스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