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mpire weekend: 아이비리그 히어로?

뱀파이어 위크엔드 Vampire Weekend의 인터뷰가 가디언에 실렸다.

Vampire Weekend: An ivy league hero is something to be
White Sky를 어쿠스틱으로 부른 영상이 있으니 봄직도 하다.

적어도 영국에서 디지털 시대로 팝이 들어선 변화는 아크틱 멍키스릴리 앨런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서양 너머에서는 뱀파이어 위크엔드가 세대교체를 상징한다. 이 뉴욕 4인조는 2008년 첫 앨범의 블로그 유명세를 이어 후속 콘트라 Contra로 미국 차트 정상에 올랐다 (그 주의 10위권에는 수전 보일, 레이디 가가, 블랙 아이드 피 등). 디지 러스컬과 XX를 비롯해 독립 레이블인 영국의 XL 레코딩의 첫번째 미국 1위작이기도 하다.

뱀파이어 위크엔드의 매력은 상류와 하류의 충돌에 있다. 미국의 특권계층을 진술하는 냉소적인 가사와 캘리포니아의 스카-펑크와 아프리카 서부의 파티음악을 아우르는 배포와 부대낀다. 아이비 리그 대학(뉴욕의 컬럼비아) 출신이라는 까닭으로 전자가 화제가 되었다. 옵저버가디언 뮤직 사이트를 위한 세션 전에 싱어 에즈라 케이닉 Ezra Koenig, 드러머 크리스 톰슨 Chris Tomson,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로스텀 배트맹글리 Rostram Batmanglij와 자리를 함께 했다.

콘트라가 미국에서 1위를 했습니다.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에즈라: 시간이 흐르면 뭔가 깨달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일이예요. 레이블의 첫 미국 1위작이기도 하거든요. 그 주의 10위권을 보는 것은 재미있었어요. 인디밴드인 우리가 정상에 있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메이저 레이블이었어요. 흥분되는 일이었죠. 이제 한계란 없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그만큼 알려지려면 밴드들이 훨씬 더 노력해야 하는 것 같군요.

에즈라: 안내도 되지만 사람들이 댓가를 치른다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르지요. 이제 레코드를 산다는 것은 밴드에 대한 신뢰지요. 미래에는 그런 접속이 있을 때가 사람들이 앨범을 사는 때가 될거예요.

기술이 그런 접속을 수월하게 만들었습니까?

에즈라: 15년 전 건즈 앤 로지스 처럼 정상에 서는 밴드는 락스타의 요소를 갖고 무적으로 보였죠. 그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 한 밴드가 그렇게 크는 일을 상상하기 힘들어요. 사람들이 트위터와 메일을 쓰는 것은 우리와 서로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지만, 그 관계에는 개인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레이디 가가 조차도, 70, 80년대의 연예인 같은 음악인들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어요.

로스텀: 아무나 할수 있다는 것이 레이디 가가의 포인트죠. 몇 년 전 만 해도 보통 사람이었잖아요. 순전히 의지만으로 원하는 뭐든지 이룰수 있다는 것을 아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하죠.

대학에서 “밴드戰” 으로 시작했습니다. 이기지도 못했죠.

에즈라: 3위였죠(웃음). 블루그래스 그룹이 이겼는데, 진짜 밴드는 아니라 논란이 되었어요. 12명이었어요. 첫날부터 그런 역경이 이어졌어요. 크리스는 이쪽 저쪽 다 연주했죠. 200불 쯤 되는 상금을 딸 기회를 두배로.

첫 앨범은 대학시절을 다루었지만 콘트라는 졸업과 더 성숙한 세계로 들어가는 이야기인데요.

에즈라: 학교가 끝날 즈음 느낀 첫번째 스트레스를 기억해요. 졸업하고 나면 일자리를 구해야하고, 건강보험, 저축, 집세 등등 생각도 않았던 일들을 걱정해야 하는구나. 우리는 각자 다른 일을 했지만 밴드는 계속했어요. 나는 선생님이었죠.

교육에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에즈라: 내가 양쪽으로 다 갈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스물넷이지만 대학때처럼 살아갈수도 있고, 고교생처럼 살수도 있어요. 아니면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어른인척 할수도 있어요. 그게 내 기분이었습니다. 그 아이들보다 8,9년 선배에 일종의 권위자인 셈이니 꼭 가장만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요.

공연 기교에 보탬이 되었나요?

에즈라: 목청을 키우는 연습이죠. 소리를 많이 질러야 했습니다.

밴드의 배경과 노래의 소재가 어떤 사람들을 언짢게 하는 이유가 뭔가요? 팝음악 속 계급투쟁은 이쪽에서는 익숙한 소재이지만 미국에서는 좀 드물잖아요.

로스텀: 우리가 직설적이라 위협을 느낀 언론인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망스러운 이야기지만 우리에 대해 쓰는 기자들 가운데에는 시야가 좁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근본적으로 우리를 오해했죠.

크리스: “케이프 코드 콰싸 콰싸 Cape Cod Kwassa Kwassa” 같은 노래는 특정 라이프스타일의 찬가가 아닙니다. “야, 이 버튼다운 셔츠 근사하지”가 아니예요. 비평이라구요.

“케이프 코드 콰싸 콰싸”에 언급된 피터 가브리엘 Peter Gabriel이 고맙다고 하던가요, 아직 활동 중임을 상기시켜주어서?

크리스: 우리 도움이 필요없는 사람이죠. 런던 공연에 실지로 왔어요. 그의 아이들이 우리 레이블 사장님 애들과 같은 학교에 다녀요. 그래서 우리 음악을 일찍 듣고 좋아했습니다. 뉴욕 자선행사에서 함께 인터뷰를 했는데 누가 계급에 대한 질문을 했어요. 그의 대답은: “노동계급 락 영웅이라는 미신이 있죠. 그거 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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