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레식 lawrence lessig교수의 코드 2.0은 2000년 나왔던 코드(1.0)의 개정판이다.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 18장에는 기술적, 법적인 이론의 언급과 흥미로운 사실, 의미있는 관찰이 담겨있다. 신중하게 잘 짜여진 글은 점잖지만 그 목적은 계몽과 선동이다 😉 다 읽을 시간이나 의욕이 없다면 부록 appendix 만 훑어도 대강을 이해할 수 있다. 듬성듬성 띄엄띄엄 어디 한번 :p

네가지 규제양식, 법, 규범, 시장, 아키텍처는 나름의 특성을 가진다. 법은 위반시의 구속력 외에도 공동체의 가치체계나 정부구조, 개인의 권리 등을 규정할 수 있다. 사회규범은 국가와 같이 집중된 권력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서로 행사하는 사소하고 다양한 구속력에 바탕을 둔다. 사회적으로 순응하는 행동을 벗어나면 일탈이다. 시장은 가격을 통해 구속한다. 가격과 가치의 교환에는 흥정이 있을 수 있지만, 법이나 규범과는 달리 계약과 동시에 의무가 부과된다. 시장의 구속력은 법과 규범의 맥락에서만 존재할 수 있지만, 그 위에서 독자적으로 구속력을 행사한다. 아키텍처는 그렇게 의존적이지 않다. 만들어졌더라도, 자연법칙과도 유사하게 존재하는 그대로 구속력을 발휘한다. 자물쇠로 문이 잠겼다면 들어갈 수 없듯 무시하고 처벌을 받을 수 없다. 부수거나 따거나, 절대적이지 않더라도 여전히 구속이다. 자연적이거나 절대적이거나 그렇지 않든, 아키텍처/코드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 코드의 구속에는 구성원도 정부도, 경찰도 검사도 판사도 필요없다. 사람이 하기 껄끄러운 일도 기계를 써서 강제할 수 있다.

법, 규범, 시장 모두 판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코드/아키텍처는 만들어지고 나면 중지할때까지 구속력을 유지한다. 여기까지가 객관적으로 본 차이점이라면, 주관적인 면에서는 그 차이가 작아진다. 객관적으로 법은 사후에 적용되지만, 사회화를 거친 성인이라면 행위 이전에도 그 영향을 받는다. 규범 역시, 미성숙하거나 이방인이 아니라면 주관적이 될수록 더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코드는 그렇지 않다. 법과 규범은 알수록 강제력을 지니지만, 코드/아키텍처는 주관적인 인식과 무관하다. 자물쇠와 물리법칙은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는 규제양식의 상대성을 이해한다면 자유의 성립하는 원리를 이해할 것이라고 제의한다. 법적인 한계 뿐 아니라, 개개인이 선택할 여지를(이래저래 제약되어도) 지켜줄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리버태리안 libertarian식으로 아무것도 않는 선택은 권력과 자본을 가진 이익집단의 전횡을 허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저자의 웅변을 옮겨보자.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척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선택이지요, 눈을 감고 있는 선택..
타조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에 흥분합니다. 세상을 보이지 않는 손에 넘기고 자랑스러워 합니다. 먼산을 보아 그 손이 보이지 않게 해줍니다.
혁명적인 기술을 만난다는 것은 문화적으로는 멋진 일이 아닙니다. 혁명을 맞았던 러시아보다 나은 준비가 된 것도 아닙니다. 그들처럼, 혁명에 잡혔다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그들과는 달리, 우리는 잃을 것들이 있습니다.

이전에 없이 규제양식의 구조에 대하여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가 도래하였으니, 이 힘을 어디에 쓰고 어디에 쓰지 않을지 이해해야만 하리.

몇가지 법률적인 얘기도 흥미롭다. 잠재적 다의성? latent ambituity – 기술이나 비용 등의 문제로 법을 만든 당시에는 고려할 필요가 없던 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법을 적용할 것인가. 헌법의 해석과 정확성/translation of constitution – 현재의 문제를 헌법의 정신에 비추어 해석한다. 우리나라 법은 어떻게 되어있을까, 레식과 비슷한 고민을 한 사례는 없을까? 문자 그대로 법을 적용하면 변화에 눈을 감는 일이다. 하지만 비용의 문제로 누리던 자유를 고집하는 것도 무리한 해석이 된다. 기술이 가져다 준 문제에 대한 판단은 오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