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s to Eat by – Ina Lipkowitz

이나 립코위츠 Ina Lipkowitz일용할 낱말들 Words To Eat By를 읽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도서관의 신간 서가에서 만만한 책을 찾다가 고른 까닭 가운데 하나는 300 페이지가 안되는 부담없는 길이였으니까.

얼핏 보면 미국인의 시각으로 본 음식과 영어 단어 얘기다. 미국 사람들이 은근 유럽 이름 식당이나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데, 하겐다즈 Häagen-Dazs나 파네라 Panera, 오봉팽 Au Bon Pain도 그 예다. 살 fresh이 아니라 고기 meat를 먹고, 돼지 pig를 길러 돼지고기 pork를 먹는다. 먹는 일은 중요하지만 먹을 것들을 부르는 일은 왜 간단하지 않을까? 문화적인 이중성, 기후와 토양, 역사와 종교를 뒤져가며 찾아보는 이야기다.

대체로 우유에 대한 로마인들의 태도가 역사를 통해 기록되어 왔다. 분명히 신약성경에서 우유 마시는 일을 영적인 미성숙의 징조로 보는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처음에 말했듯이 그러한 연관은 불가피한 것이라기 보다는 문화적인 것이다. “역사는 승리자가 쓰는 것이다.”라고 윈스턴 처칠이 말했다고 전한다. 우유의 경우에는 부인할 수 없이 사실이다. 우리는 씌어진 것 밖에 알 수가 없는데, 그리스인, 로마인, 기독교인들이 저술했으므로 우유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승리한 것이다.

우리는 파, 양파를 부르는데 영어로는 양파 onion와 초록 양파 green onion이라고 부른다. 그 해답도 조금 나오지만, 파 내지 양파 종류의 채소가 많고 이름도 다양하다.

과일과 사과, 파 종류를 통해 보는 풀과 채소, 우유와 유제품, 고기, 빵. 이 다섯 가지를 통해서 어원과 역사, 변화의 의미를 추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고나 자연적인 발효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첨가물을 통해 팽찰시키는 부풀림 과정은 거의 언제나 더 세련되고 문명화된 방법, 즉 빵을 만드는 더 나은 방법으로 일컬어졌다. 생각해 보면, 빵에서 부풀리는 일은 과일나무의 가지치기, 채소의 경작, 우유의 치즈 만들기, 고기의 소스와 같다. 이 논리에 의하면, 납작빵을 먹는 사람들은 작고 딱딱한 신 사과, 풀 같은 부추, 응유(凝乳), 뒷다리를 꿰어 구운 고기를 먹는 사람들과 같다. 여러 세기 전 지중해안에서 북쪽으로 흘러간 언어나 요리 기교를 물려받지 못한 사람들.

The leavening process – not simply natural or accidental fermentation, but deliberate leavening by means of an added agent – has almost invariably been seen as the more sophisticated way, the more civilized way, in short, the better way to make bread. When you think about it, leavening is to bread as grafting is to fruit trees, cultivation is to vegetables, cheese making is to milk, and saucing is to meat. People who eat flatbread, by this logic, are the same as those who eat hard little sour apples, weedlike leeks, curdled milk, and spit-roasted haunches of meat – the people who inherited neither the cultinary skills nor the language that traveled up north from the shores of the Mediterranean so many centuries ago.

뉴욕의 보쌈집 momofuku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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