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지식인의 죽음 황무지에서 혼자 살아가지 않는 이상,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지식인’이라는 말에는 단순하게 많이 배우고 안다는 뜻을 넘어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가치가 부여된다. 인터넷 포탈의 지식인 말고. 이동걸 원장 같은 사람도 있다.

1,2,3장에 한국의 지식인 풍경과 문제가 정리되어 있다. 취업에 유리한 공부를 하는 학생, 대학의 교수 평가 방식의 한계, 학술진흥재단대학의 문제. 국가, 기업의 학술 지배와 그로 인한 지식인의 종속 문제를 박노자는 ‘지식 노동자’라는 말로 축약한다.
4,5장에서 정치권력, 경제권력과의 관계와 영향을 본다. 박정희에서 노무현까지 정권에 참여한 주요 지식인 출신 장관을 정리한 표는 볼 만 하다. ‘직업이 장관‘인 사람들도 눈에 띈다. 정권이 바뀌고 사회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위력.

신문에 비해 지면의 여유가 생기니 김우창 교수의 글이 돋보인다. 한 대목 옮겨보자.

근대 세계사에서나, 우리 역사에서나 정치혁명은 늘 이데올로기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이데올로기는 사회구조 전체를 한 관점에서 설명하려 한다. 그런데 부정의 관점은 긍정의 관점보다도 더 쉽게 전체를 드러내 보여 준다. 구조의 긍정적 효과들은 작은 것들이 총계로서만 파악되는 데 대해 부정적 측면은 쉽게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연결된다. 사회의 복합성은 부정에 의해 단순화된다. 이것은 삶이 끝없는 세말사인 데 대해 죽음은 하나의 사건인 점에 유사하다. 혁명적 전복의 시기에 사람이 필요로 하는 도덕도 정의(正義) 하나로 단순화된다[정의는 다른 덕성에 비해, 가령 인(仁)에 비해 부정의 덕성이다]. 부정의 이데올로기는 어떤 역사적 과업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은 어떤 역사적 순간에만 그리고 파괴의 작업에만 현실적 의의를 갖는다.

민주화 이후 맥빠진 사회의 진보와 정치적 변화에 대한 진단 아닌가.

문화권력, 시민운동, 미국편중, 대중지성을 다룬 나머지 장은 간략하게 훑고 넘어간 느낌이다. 마무리 좌담도 읽을 만 하다. 후기에 열거된 지적 가운데 여성과 비정규직에 대한 문제, 지식인 간의 권력 문제에 대한 조명이 부족하다는 비판에는 동감이다.

민주화 20년, 외환위기 10년이 된 것이 작년, 김상조 교수의 글에서 한 구절 더.

모든 지식인이 진보적일 수도 없고, 모든 지식인이 현실 참여적일 필요도 없지만, 지식인이 ‘자기 검열의 공포’를 벗어나 그 연구 성과를 지식시화 및 일반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은 확보되어야 한다. 최소한 대학이 재벌의 지배를 벗어나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경향신문 정치,국제 에디터 이대근의 서문 잘 썼다. 가치있는 기획을 책으로 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인터넷에서도 잘 엮으면 읽기에 더 낫고, 더 많이 읽을 것이다. 이런건 많이 아쉽다.

경향신문 [민주와 20년, 지식인의 죽음]

2 thoughts on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1. 구조의 긍정적 효과들은 작은 것들이 총계로서만 파악되는 데 대해 부정적 측명은 쉽게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연결된다. – 김우창 교수의 통찰력에 크게 공감하게 됩니다. 특정 사안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무한대의 파일 중 한두개를 뽑아서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죠.

  2. 제가 잘못 쳤군요. 측명->측면으로 고쳤습니다.
    몰라서 용감한 데에는 찔리는 바가 많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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