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저고리’만 그리는 만화가 이두호의 만화 인생. 작가의 성장기와 작품들, 한국의 만화 검열과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담겨있다.
1/3 정도를 차지하는 성장기 ‘나 만화 그린다 어쩔래’가 재미있다. 한 우물을 판 고집장이의 이야기에서 사람냄새가 난달까. 만화를 좋아도 했으니, 열거된 작품 가운데 기억이 나는게 적지 않다. 그림솜씨와 개성있는 이야기에 눈을 뜨기도 전에 본게 많아 아쉽기도 하다.
어두운 서울 시내를 바라보며 역에 혼자 서 있던 때의 그 을씨년스럽고 막막한 기분은 아직도 안 잊혀진다. 그 진한 어둠 속에 혼자 있으니 얼마나 외롭던지······. 정말 세상천지에 나 혼자라는 걸 절감한 시간이었다. 그때 누군가 곁에 있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랐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는 여인숙에서 자기도 하고 아는 사람에게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신 새벽의 서울은 오랫동안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이 길을 가려고 했던 게 아닌데 자꾸자꾸 걷게 되는 길. 그걸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중학교 때 내가 그렸던 첫 장편만화 <피리를 불어라>는 과연 나의 운명이었을까. 단 한 순간도 만화가의 길을 생각한 적이 없었던 내가 우연한 기회에 그리게 된 한 편의 만화가 어쩌면 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운명’이라는 말을 결코 순응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인생이라면 길다면 긴 길을 걸으며 언제나 함께하는 운명이라면 나는 나와 의견이 다르면서도 함께 붙어 있는 길동무쯤으로 생각한다. 운명은 그냥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바람들과 현실이 피터지게 싸우며 얻은 나의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