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고민 없이 살면 좋겠지만 사는게 그러기는 어렵다. 소비사회의 ‘쿨’함이 미덕이던 20세기를 지나 양극화의 고랑에서 확실한 것이 드문 시대다. 경계인 강상중 교수는 100년 전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에서 고민하는 삶의 힘을 찾는다.
“재일동포 3세가 한국에서 어학당에 갔는데 왜 한국말을 못하냐고 추궁을 당한 반면 바로 뒤에 온 재미동포 2세가 한국말을 못하는 것에는 자연스럽게 여기는 장면을 목격했다더라”는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나라에 사는 동포냐가 동포를 차별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북한 사람들도 일본에서 귀국한 동포들을 ‘귀포(歸胞)’라는 차별적인 말로 부르고, 한국에서는 ‘반쪽바리들’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제3국인’이라고 차별받는 현실에서 젊은 재일동포들은 한국도 일본도 아닌 제3국으로 가려는 이들이 있다. 그곳에서는 정체성의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고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