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 한국사회의 열쇠말 가운데 하나가 된 88만원 세대. 저자인 우석훈이 기고했던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노무현 시대의 비망록’ 같은 의미라는 설득에 내었다는데, 한데 묶어놓으니 맥이 통해서 기사로 접했던 글도 새로운 맛이 있다.
1부인 ‘고공비행, 노무현 시대의 하늘을 날다’가 날카롭다. 기대와 실망, 막연한 미련을 확 깨게할 얼음장같은 비판은 지금도 여전히, 어쩌면 더 의미가 있다. 순수를 잃은 좌파, 도덕을 버린 우파. 잘못된 판단과 정책, 합의없는 실행, 민중의 위기. 후련한 글솜씨. 왜 통쾌하지 않고 서글퍼지나?
‘인물열전’이라고 묶은 2부는 20대를 응원하며 맺는다. ‘녹색환경’을 이야기하는 3부가 흥미로운데, 물질과 속도에 사로잡힌 사회의 대안을 이명박의 서울을 뒤집어가며 찾는다. ‘심시티‘보다 ‘그린시티’, 녹색도시가 더 낫고 재미있다는 것을 그려주는 사용설명서랄까. “(돈있는)너만 부자되세요” 하는게 아니라 구민, 시민들의 편익을 찾고 합의를 구하는게 바로 정치다. 지금 뜨거운 쟁점이 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에 관해서도 길지 않지만 쉽게 얘기한다. “미국 국민들도 다 그거 먹는데, 왜 한국만 난리냐!”는 고위직 인사나 정책 결정자들의 사고도 짚는다.
관리 가능한 위험이라는 말은 현재 워낙 문제가 심각한데 제어 불가능한 상태를 그나마 제어라도 가능한 상태로 전환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런데 ‘무위험’을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바꾸자는 기가 막히고도 엄청난 말을 하면서. 마치 “이 정도는 우리가 다 대비했어요”라는 식으로 앙증맞고 귀엽게 얘기하는 정부 측 전문가들을 보면 정말 끔찍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광우병의 특징과 위험성을 총리도 모르고, 농림부 장관도 제대로 모른다. 자신들도 떡국을 먹고 설렁탕을 먹는 사람들인데, 알고도 이러기는 어렵다. 이 사람들이 ‘브랜드 한우’ 만을 사용하는 한정식집에서만 식사를 해서 이렇게 둔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제로 위험’을 ‘관리 가능한 위험’으로 바꿔놓고도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이 정부를 보면서 “이게 도대체 정부야, 깡패야?”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온게 작년 10월 말이다. 아직 30개월에 검역 중단도 하던 때 말이다.
‘세상단평’인 4부는 그 외 이야기. 소관 업무인 학교를 없애는 일에 매진하는 교육부를 없애자는 이야기 와닿는다. 소관 업무에 충실하지 않기는 국세청도 마찬가지 같던데. 도서관 재정에 대한 지적이나 무료버스 같은 발상은 무척 공감이 간다.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더 많이들 고민하고 고려하면 좋겠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것 같은 세상. 답답하고 서글픈 현실이 꼭 당위는 아니다. 다른 속셈이나 이유가 있는 일도 많고, 그저 무능하고 무관심해서 배가 산으로 가기도 한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명랑’으로 이겨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