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ck doctrine – naomi klein

냉전시대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보다 우월한 체제다. 공산주의는 사악하고 민주주의는 아름답다. 시장은 신성한 것이어서,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거를수 없는 대세였다.

그렇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살기는 더 좋아졌는가?

나오미 클라인 Naomi Klein의 책 쇼크 독트린 Shock Doctrine은 세계화된 자유시장이 민주적으로 승리했다는 그 믿음에 문제를 제기한다.

태풍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뉴올리언즈에서 ‘깨끗하게 시작할 기회’를 이야기한 사람들(재개발의 추억?) 가운데에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이 있었다. 현대사의 사건들을 연구하고 재해현장을 탐방한 클라인은 노벨상을 탔던 경제학자 프리드먼과 시카고 학파가 깊이 관여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연관을 찾았다. 충격 학설 쇼크 독트린.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겪은 우리는 WTO, IMF 같은 기구들이 요구하는 구조조정 패키지를 안다. 사영화, 규제철폐, 공공지출 삭감 등으로 자국의 시장을 활짝 열어젖히라는 요구를 우리는 겪었다.

1970년대 칠레는 군사 쿠데타로 프리드먼이 꿈꾸던 시장경제를 실험할 첫 기회였다. 쿠데타의 충격은 경제적인 충격 요법의 발판이 되고, 고문실의 충격은 반대자들에게 공포를 안겨주었다. 군부와 경찰이 KUBARK 매뉴얼의 방법들을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클라인은 충격 학설의 논리를 고문에 비유한다. CIA는 “강제적인 심문”이라는 말을 쓰는데, 감각을 빼앗고 물리적인 자극으로 신체를 압도하는 “연화과정”을 거치면 정신적인 태풍을 겪고 이성적인 사고나 방어의 능력을 잃는다. 이런 충격의 상태에서 죄수는 정보, 진술, 전향서 등 심문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줄 준비가 된다.

쇼크 독트린은 이 과정을 정확하게 따르고, 고문이 1대1로 심문실에서 하는 것을 대규모로 달성하려고 한다. 9/11이 그 명백한 예다. 충격 후 깨끗한 백지처럼 마비된 의식은 “악의 축”, “이슬람 모슬렘 파시즘”, “국토 안보” 같은 말을 잘 받아들인다. 그리고 사영화된 전쟁, 기업안보 공동체 등 이전에 꿈만 꾸던 일들이 가능해졌다.

충격 학설 쇼크 독트린은 이렇게 작동한다: 테러리스트의 공격, 시장 붕괴, 전쟁, 해일, 태풍 등 원래의 재난이 전 국민을 집단 충격의 상태로 몰아넣는다. 고문실의 시끄러운 음악과 주먹처럼 폭탄투하, 테러, 몰아치는 바람 등은 사회 전체를 연하게 만든다. 공포에 질린 죄수가 동지들을 배신하고 믿음을 버리듯, 충격에 빠진 사회는 맹렬하게 지켰을 것들을 포기하곤 한다.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폴란드, 중국 천안문, 남아프리카 공화국, 러시아, 아시아 금융위기, 이라크 전 등 저자는 충격 요법의 예와 정황을 자세하게 제시한다.

구조조정은 국가들이 위기에서 자국의 경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거쳐야하는 절차로 제시되었다. 그 종합 정책을 받아들인 정부에게 있어서 외부적인 균형과 가격안정을 유지하는 건전한 거시 정책과 자유 무역과 같이 개방을 결정하는 정책의 차이는 은폐되었다.

폴란드의 전철을 밟지 않고 기업기반의 경제로 전환하려고 모색하던 중국의 등샤오핑은 프리드먼을 초청하여 특강을 듣기도 했다. 중국의 문제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시위자들을 밟고 자유시장 정책을 당이 밀고 나갈 것인가, 민주주의 요구에 굴복하여 권력의 독점을 중단하면서 경제계획의 후퇴를 무릅쓸 것인가? 였고 당은 전자를 택했다.

천안문 사태가 밝힌 진실 하나는 공산독재와 시카고 학파 자본주의의 전술적인 유사점이다. 반대자들을 없애고, 모든 저항을 지우고 새로 시작하려는 의지. 그리고 언제나처럼 프리드먼은 자신의 조언과 그 조언을 실행하기 위해 요구된 폭력 사이의 연관을 부정했다.

칠레의 전신, 아르헨티나의 항공사, 러시아의 유전, 볼리비아의 상수도, 미국의 공중파, 폴란드의 제조업, 이 모두가 공공의 자산으로 설립되었으나 푼돈에 팔렸다. 색스가 “정상” 자본주의라 부르는 20세기 중반 자본주의의 업적, 노동자 보호, 연금, 공공 의료와 극빈자 지원 등 미국 정부의 정책은 당시 좌파의 득세에 따른 현실적인 필요의 소산이다. 공산주의가 위협인 동안은 케인즈주의라는 신사협정이 유지되었지만 일단 공산주의가 저변을 잃자 타협을 지우고 프리드먼이 반 세기 전에 시작한 운동의 순수한 목표를 충족할 수 있었다.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 Disaster Capitalism Complex에 대한 서술은 놀랍지만 근거없는 음모론이 아니다. 정부가 국가기관의 혁신을 사기업으로 넘기는 사영화의 주체가 되는 변화는 현실이다. 세금으로 수요를 만들고 안보를 외주하는 미국내 충격 요법.

1950년대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던 솔크는 특허를 내지 않았다. 같은 나라, 다른 시대에서 럼스펠드가 있던 길리어드 과학은 타미플루와 다른 AIDS 치료제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다. 군을 외주하는 체니, 전염병을 예방할 약을 특허로 독점하는 럼스펠드, 정부기능의 경매를 이야기했던 대통령 부시, 삼박자가 맞아 완벽하게 속이 빈 정부의 미래를 보였다. 예산이 부족하고 무력한 약한 공공 영역, 예산이 넉넉한 기업 인프라. 도급에는 아낌없이 쓰고, 정부의 기본 기능에는 예산이 없다. 도급업자들이 운영하는 정부랄까. 이라크에서처럼 이윤을 취할 기회는 어김없이 누군가가 가져갔고, 바가지와 무능, 부정은 반복된다. 도급과 외주가 거듭되면 책임소재는 찾기 어렵고 묻지 않는다.

옛날도 아닌 과거에, 재난은 사회적인 평등의 기간이요 파편화된 공동체가 차이를 미루고 힘을 모으는 드문 순간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재난은 그 반대가 되었다. 돈과 인종이 생존을 사는 잔인하고 인정없이 분단된 미래를 보여주는 창이 된다.
바드다드의 녹색지대 Green Zone는 그 세계 질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자체 전력망, 전화와 하수시설, 유류저장시설과 최신시설의 병원과 흠없는 영화관, 이 모두가 5미터 두께의 벽으로 보호된다. 이라크라는 적색지대 Red Zone, 폭력과 절망의 바다 한 가운데 정박한 거대한 카니발 크루즈 요새같다. 배 안에 있다면, 수영장 옆에 음료가 있고 할리우드 영화와 운동기구들이 있다. 선택받은 자가 아니라면, 그 벽에 가까이 서는 것 만으로도 총에 맞을지 모른다.

녹색지대는 뉴올리언즈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 IT거품을 능가하는 국토 안보 거품, 영원하지 않을 기회를 잡으려는 기업들. 총과 캐비아 지수 the guns-to-caviar index는 흥미로운 변화를 시사한다. 1994년 평화가 찾아오는듯 하던 중동 정세의 변화에는 구 소련에서 유입된 유대인들, 그리고 대테러 첨단산업 수출로의 이스라엘 경제변화가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2007년 출간된 책의 결말은 이미 지난 과거이고 현재이다. 남미, 레바논, 스페인, 태국에서의 희망적인 변화는 진행중인 과정인 셈이다. 우리는 충격에 제대로 잘 대응하지 못하지만, 위기를 통해 성장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충격에 대한 최고의 완충장치는 기억이다.

차분하고 냉철한 글이지만 복잡하지 않고 잘 짜여져 있다. 어쩌면 시적이기까지 하다. 번역되어 나온줄 알았으면 수월하게 읽었을걸! (Disaster Capitalism을 자본주의 재앙이라고 옮긴건 좀 그렇다만)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