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로 가까이, 인터넷의 사회학 – nytimes

말풍선이 빼곡, 기사 꼭대기에 있는 피터 조의 삽화가 인상적이다. 웹 2.0의 총아 페이스북뉴스피드, 주변인식(분위기 파악이랄까, ambient awareness), 트위터. 인터넷과 사람 사이의 거리, 외로움. 클라이브 톰슨의 기사가 흥미롭다. 이번에도 원문은 조금 길다.

I’m So Totally, Digitally Close to You – Clive Thompson
– NYTimes.com

Brave New World of Digital Intimacy “피곤한 월요일”, “커피 마시는 중”, “오늘도 야근”.. 짤막하게 기분이나 상태를 고치는 일은 사소하고 귀찮아 보인다. 일본의 사회학자 이토氏의 연구에 의하면, 전화에서 시작한 현상이다. 다른 도시에 떨어져 있는 연인들이 “TV 보는 중”, “술 한 잔 한다” 등 문자메시지를 밤새 주고 받았다. 몇 시간 씩 하는 통화의 불편이나 부담이 까닭이었는데, 짧은 문자가 통화보다 더 친밀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하나하나는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지만, 부담없는 정보가 쌓이면 의미를 찾게 된다. 무슨 말인지 모를 타인의 트위터, 페이스북을 하루종일 보면 단편소설이 되고 한 달이 지나면 장편소설이 된다고나. 그렇게 저자는 직접 트위터에 빠져보고,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사람은 누구나 개인적인 친교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인류학자 로빈 던바의 연구는 흥미롭다. 원숭이는 이를 잡고 털을 골라주고, 사람은 대화를 한다. 잡담, 험담 혹은 이잡기. 누군가를 “안다”고 느끼기 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관계를 감당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원숭이 집단은 대략 55개체까지 확장되는데, 인간의 두뇌용량을 고려한다면 사회적인 관계는 더 크지 않을까. 해서 평균 150이라는 숫자가 나왔단다. 심리학 연구에서 확인한 150이 이른바 던바의 숫자.

사회망과 인터넷의 만남으로 다양한 서비스가 쏟아졌다. 메신저, 아이러브스쿨, 싸이월드, 다음 카페, 미투데이 등등.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만나는 가까운 친구의 범위가 넓어졌다. 모두가 아낌없이 줄 친구는 아니지만, “좀 아는” 관계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기사에서 예를 든 피튼氏의 경우, 지난해 세금계산의 문제를 발견했다. 트위터에 하소연한지 10분이 되지 않아 변호사, 회계사를 추천받을 수 있었다. 50불 넘는 물건을 살 때면 5300명이 넘는 그녀의 트위터 망에 조회를 먼저한다고 농담을 했단다. 이른바 “인생고민 외주”가 되겠다. 다행히 부당한 차별이 없는 외주랄까.

좋은 점 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만나고 헤어지는 데 있어 일촌관계의 부침이 있다. 다른 사람의 일상을 아는 만큼 당신의 일상도 노출되어 있다. 누구집 숟가락이 몇개인지 안다던 얘기가 21세기에도 유효할 수 있다.

문명과 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물건을 만든다. (신상?:p) 기존의 관습과 가치의 틈새 혹은 바깥의 일은 낯설고 혼란스럽다. 뭐에 쓰는 물건인가? 새로운 물건의 쓰임새를 찾고, 잘못쓰거나 무리하는 사이 사람들의 삶이 그로 인해 변화한다. 변증법이든 인간의 적응력이든 거듭 확인하게 된다. 피튼씨의 경우처럼 행복과 평온을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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