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번역 출간

어느새 캐롤의 소설이 번역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신작 사랑하는 유령들 ghots in love은 아직 미국에는 나오지 않았고, 이태리판 달의 뼈는 표지가 예쁘다.

웃음의 나라에 대해서는 근사한 서평을 참조하시라. 벌집에 키스하기 kissing the beehive는 페이퍼백으로 아직 읽지 않고 남겨둔 책인데, 흐.

지난 여름 기억을 되살려 캐롤 블로그 carollblog에서 그가 작가가 된 계기를 옮겨본다.

학창시절 나는 수학은 늘 꽝이었다. 낙제가 아니면 바랄게 없었지만, 재이수하거나 여름학기를 들어야 했다. 10학년 때, 부모님은 공립학교 열등생이던 나를 어려운 사립 기숙학교로 보내셨다. 끔찍한 일이었다. 수학뿐 아니라 다른 과목까지 낙제하고 말았다. 여름학기, 학교에서 여름을 보내야 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나마 잘하던 것이 영어라, 이왕 있는 김에 작문까지 듣기로 했다. 강의를 맡은 선생님은 연전에 잡지 뉴요커에 글을 싣기도 해서 학교에서는 작가로 통했다. 좋은 사람이었지만 수업은 지겨웠다. 학기가 시작하고 몇주가 지난 어느 아침, 그는 오늘은 좀 바꿔보자, 이야기를 읽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우리는 앓는 소리를 했을 것이다. 여름이었고, 더운 날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백만 가지는 넘지 않았겠는가. 우리들 대부분은 학교에서만, 시켜야만 책을 읽었다.

토마스 울프의 이야기 ‘새벽의 서커스’, 북캐롤라이나 촌에 사는 두 꼬마의 이야기였다. 해마다 마을에 서커스가 오는 며칠이 낙이었다. 여름 어느 새벽 몰래 집을 빠져나가 서커스 기차가 당도해 짐을 부리고 준비하는 광경을 본다는 이야기다. 낯선 짐승들이 우리에서 끌려나오고, 광대들이 나타나고, 인부들이 준비를 시작하는 것을 꼬마들이 바라본다. 물론 그들은 넋을 놓고 바라본다. 무척 재미있는 이야기였고 선생님의 낭송을 들으며 나는 창밖 여름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막이 세워지고 일이 거의 마무리될 때 쯤 서커스 단원들은 한데 앉아 식사를 한다. 울프는 식사를 하나하나 멋들어지게 묘사한다. 쌓아올린 팬케익, 버터에 단풍시럽을 뿌린 와플, 김이 오르는 뜨거운 커피병, 달걀 부침, 갓구운 햄버거와 스테이크 등등. 그는 아침을 설명해나갔다. 맛나는 문장에 빠진 나는 밥상에 앉아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먹고 있었다. 선생님이 숨을 돌리는 순간, 어디선가 ‘뚝’ 하고 작은 소리가 났다. 서서히 고개를 숙여 갈색 나무 책상을 보자 반들거리는 점, 침자욱이 보였다. 내가 흘린 침이었다. 울프가 묘사한 식사에 무의식적으로 침을 흘린 것이다. 책상 위 한 방울을 바라보고 느낀 경이감을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 순간.” 나는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깨달았다. 내가 쓴 글이 50년이 지나 누군가에게 그런 효과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내 소원이다.

3 thoughts on “캐롤 번역 출간

  1. 1년도 안된 직장생활은… 너무 지겨워요.
    한국은 여전히… 낯설어요.
    세상엔 정말 소크라테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사람들이 많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오늘도 ‘너 자신을 알라’를 곱씹어요.

    건강하시고… 들르시면 전화 잊지 마시고.

  2. 텍사스 생활이 얼마에 그 동안 읽은 책이 몇권입니까. 그 절반 정도 지나면 어쩌면? :p
    그 지겨움 낯설음 안주 삼아 술을 사야하는데 말입니다.

    꽃놀이에 여의도는 몸살을 좀 앓았겠군요. 봄나물은 벌써 다 지났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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