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찬 도시에서 의미를 잃어가는 골목길. 임석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종합한다.
‘아늑한 휴먼스케일을 유지하며, 차가 다니지 않아야 하고, 근대사의 주역인 서민들이 사는 공간이며, 일상성의 가치가 살아 숨쉬는 동네다. 또한 능선에 나지막하게 퍼져 있어야 하며, 한국전쟁 이후 독재 개발기 때 농촌이 붕괴되면서 대도시로 내몰린 사람들의 군집지이고 별의별 불규칙한 공간의 종합선물세트이며, 귀납적 축적의 산물’이다.
사라져가는 골목길을 찾고 담는 방법은 역시 발품을 파는 것이다. 저자는 삼개월 동안 여덟 동네, 약 450여 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다고 한다. 그 결실이 정성스럽게 그린 약도와 세심한 관찰, 동네 사람들과의 이야기로 담겨있다.
워낙 변화무쌍한 서울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골목길이기에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지만, 감상이나 낭만에 치우치지 않은 잘쓴 글이다. 거기에 전문용어가 지나치지 않을 만큼 쓰여 건축개념이나 학술적인 가치를 설명한다.
좋은 사진이 많다. 상품가치를 따지지 않은 생활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고 개성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이랄까. 어귀어귀에 숨은 조형미와 구성미는 건축작품 못지 않다. 저자는 불량주택 혹은 재개발의 통한 돈벌이 기회로 매도당하는 골목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호소한다.
답사와 연구결과를 추리고 추린 것으로 짐작되는 공들인 책, 편집도 아담하고 사진도 깔끔하게 인쇄되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