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면 용감하다 – 이두호

무식하면 용감하다 ‘바지저고리’만 그리는 만화가 이두호의 만화 인생. 작가의 성장기와 작품들, 한국의 만화 검열과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그림과 함께 담겨있다.

1/3 정도를 차지하는 성장기 ‘나 만화 그린다 어쩔래’가 재미있다. 한 우물을 판 고집장이의 이야기에서 사람냄새가 난달까. 만화를 좋아도 했으니, 열거된 작품 가운데 기억이 나는게 적지 않다. 그림솜씨와 개성있는 이야기에 눈을 뜨기도 전에 본게 많아 아쉽기도 하다.

어두운 서울 시내를 바라보며 역에 혼자 서 있던 때의 그 을씨년스럽고 막막한 기분은 아직도 안 잊혀진다. 그 진한 어둠 속에 혼자 있으니 얼마나 외롭던지······. 정말 세상천지에 나 혼자라는 걸 절감한 시간이었다. 그때 누군가 곁에 있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랐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는 여인숙에서 자기도 하고 아는 사람에게 신세를 지기도 했지만 신 새벽의 서울은 오랫동안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이 길을 가려고 했던 게 아닌데 자꾸자꾸 걷게 되는 길. 그걸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중학교 때 내가 그렸던 첫 장편만화 <피리를 불어라>는 과연 나의 운명이었을까. 단 한 순간도 만화가의 길을 생각한 적이 없었던 내가 우연한 기회에 그리게 된 한 편의 만화가 어쩌면 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운명’이라는 말을 결코 순응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인생이라면 길다면 긴 길을 걸으며 언제나 함께하는 운명이라면 나는 나와 의견이 다르면서도 함께 붙어 있는 길동무쯤으로 생각한다. 운명은 그냥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바람들과 현실이 피터지게 싸우며 얻은 나의 길인 것이다.


대학에서도 만화에 관심을 갖고 학과를 만들면서 교수가 되고, 학생을 가르치는 이야기는 꽤 실감이 난다. 다른 나라의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마지막 장은 좀 가볍다. 한국 만화계의 대부분을 현역으로 살아온 작가에게는 관심거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게다.

1997년 검열열풍과 청소년보호법 제정을 겪으며 붓을 꺾었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검찰이 만화에 들이대는 잣대, 서약서 요구나 몇년을 끄는 지리한 재판과 차라리 간편한 벌금. 담백한 성품의 작가에게도 상처가 남은듯 하다. 사상과 창작에 족쇄를 채우는 사람들은 머리 속에 새장을 담고 있는걸까. 그런 사람들 가운데에서 문화산업 육성이나 부가가치가 높은 ‘컨텐츠’ 이야기하는 사람이 또 많을게다. 출판, 배급, 유통보다 어쩌면 더 큰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게 아닐까, 혹시 다시 담장을 쌓는게 아닐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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